한국 양금, 윤은화와 함께 날아오르다

양금 연주자·제작자·작곡가·교육자로 활동하며 양금 패러다임 바꿔 
1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단독 공연 ‘페이브’

입력 : 2024-07-10 09:40/수정 : 2024-07-10 10:36
윤은화는 양금 연주자·제작자·작곡가·교육자로 활동하며 한국 양금의 패러다임을 바꿨다. 오는 17일 국립극장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단독공연을 펼치는 윤은화가 최근 서울  은평구에 위치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가졌다. 이한형 기자

맑고 청아한 소리를 내는 양금(洋琴)은 국악기 가운데 유일하게 쇠줄을 가진 현악기다. 가야금, 거문고, 아쟁, 해금 같은 현악기가 명주실을 사용하는 것과 구분된다. 양금은 사다리꼴의 평평한 공명상자 위에 쇠줄을 얹고 대나무를 깎아 만든 가느다란 채로 줄을 쳐서 소리를 낸다.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원래 서양에서 유래한 악기로 영미권에서는 덜시머, 동구권에서는 침발롬으로 불린다. 그리고 18세기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와 국악기로 뿌리내리게 됐는데, 중국 양금(揚琴)과는 다른 한자를 사용한다.

그런데, 한국의 전통양금은 음량이 크지 않은 데다 농현(국악 현악기에서 왼손으로 줄을 짚고 흔들어 음을 꾸미는 기법)과 조율이 어렵기 때문에 독주 악기가 되지는 못했다. 대신 소규모 풍류음악과 궁중음악에서 튀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다른 악기 연주자들이 합주 중에 필요할 때 잠깐 한 손으로 치는 경우가 많았다.

윤은화(41)는 한국에서 양금의 패러다임을 바꾼 인물로 ‘철현의 여제’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중국 연변 재중동포 출신으로 한국에 귀화한 그는 양금 연주자이자 제작자·작곡가·교육자다. 특히 북한과 중국 양금의 장단점을 분석해 직접 개량양금을 만든 뒤 수많은 제자를 키워냈다. 전통양금이 7음계에 불과한 데 비해 그의 개량양금은 12반음계다. 음역대가 4옥타브반 56음이라 다양한 작품의 연주는 물론 농현도 가능하다. 오는 17일 국립극장 하늘극장에서 ‘2024 여우락 페스티벌’의 일환으로 윤은화의 단독 공연 ‘페이브(PAVE)’가 열린다. 전통음악에서부터 현대음악, 전자음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양금의 새로운 방향성을 모색해 온 그가 그동안 걸어온 길을 망라해서 보여줄 예정이다. 공연을 앞두고 최근 그의 스튜디오를 찾아가 양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한국의 전통양금(위)과 윤은화의 개량양금.

재중동포 출신으로 20살부터 한국에 정착

“이번 콘서트는 제가 양금 분야에서 그동안 길을 닦아온(pave) 과정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제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양금 분야는 불모지였지만 지금은 국악관현악단에 양금 정원이 생겼고 대학원에서 전공하는 학생도 늘어났습니다. 제가 회장으로 있는 한국양금협회 회원이 이제 150명이 넘습니다. 이 모든 것이 제겐 역사입니다.”

그는 중국 연변 조선족 자치주 출신으로 4살 때 아코디언을 시작했다. 6살 때 중국의 전국아코디언 콩쿠르에서 2위에 오를 정도로 음악적 재능을 보인 그는 피아노를 비롯해 다양한 현악기와 타악기를 섭렵했다. 그런 그가 가장 끌린 악기는 7살 때부터 배우기 시작한 양금이었다.

“제가 어릴 때는 연변에 북한이 운영하는 음악학원이 있었어요. 그곳에서 저를 비롯해 조선족 어린이들이 다양한 악기를 배웠죠. 절대음감을 가졌지만, 손가락이 짧았던 제게 맞는 악기가 타악기이자 현악기인 양금이었어요. 이후 중국과 한국의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국립국악원 등 한국 국악계 선생님들이 연변에 와서 가르치게 됐는데요. 당시 선생님들이 합주에 참여하고 통역도 하던 제게 한국 대학 진학을 권유하셨어요.”

자신이 만든 개량양금을 연주하는 윤은화. 그의 개량양금은 현재 전국 국공립국악관현악단과 학교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윤은화

연변대 부속 초·중·고를 졸업한 그는 연변대에 진학하는 대신 서울대로 유학을 왔다. 자유롭게 음악 활동을 하려면 중국보다 한국이 좋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서울대에서 타악을 전공하며 전통국악을 익힌 그는 중앙대에 다시 입학해 창작국악을 공부하는 한편 양금 연주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이를 위해 그는 당시 한국에 없던 개량양금을 직접 개발해 2011년 자신의 이름 ‘YUN EUN HWA’를 넣어 특허까지 받았다. 북한의 개량양금을 모티브로 삼되 여러 나라 양금들의 장점을 모은 그의 개량양금은 현재 전국 국공립국악관현악단과 학교 등에서 사용되고 있다. 이후 음의 색감을 바꿔주는 이펙터를 단 전자양금과 소리에 따라 양금의 색깔이 변하는 LED양금을 개발하는 등 그가 지금까지 개발한 양금은 8종류에 달한다.

"양금의 가능성을 국악계에 알린 것에 뿌듯"

“전통 양금만으로는 발전이 어려워서 개량양금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야 연주 기회가 많이 생길 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좀 더 편하게 배울 수 있으니까요. 연변과 북한의 개량양금 몇 대를 부숴가며 설계도를 만든 뒤 중국의 악기상과 악기공장을 찾아가 부탁한 끝에 개량양금을 만들었어요. 이후 뮤트 페달과 괘를 장착해 음의 길이를 제어할 수 있게 하는 등 개량을 거듭했습니다. 개량양금 특허를 낼 때 어떤 분들은 ‘아무도 안 살 텐데 무슨 특허냐’며 비웃기도 했지만, 이제는 양금 연주자라면 모두 제가 만든 양금을 사용합니다. 다만 개량양금은 한국에서도 만들 수 있지만 전부 수제이다 보니 단가가 높아져서 지금도 중국 악기공장에 주문해서 가져옵니다.”

악기 개량에 맞춰 다양한 채를 활용하는 등 새로운 주법들을 만들어낸 윤은화는 연주는 물론 작곡에도 나섰다. 그가 지금까지 양금을 위해 작곡한 곡은 독주곡부터 협주곡까지 50곡이 넘는다. 특히 국내에서 그동안 없었던 양금 산조와 양금 시나위 등을 선보였다. 그리고 그가 멤버로 속한 국악 록그룹 동양고주파는 아시아 밴드 최초로 세계 최대 국제 뮤직 마켓 WOMEX(워맥스)에 2년(2020~2021년) 연속 선정될 정도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고 있다. 그런가 하면 남북한 악기로 구성된 통일앙상블의 음악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의 전방위 활약 덕분에 현재 양금은 독주, 실내악, 협연으로 인기가 많은 악기가 됐다.

윤은화(가운데)는 장도혁(왼쪽·퍼커션), 함민휘 (베이스)와 함께 국악 록그룹 동양고주파의 멤버로도 활동하고 있다. 동양고주파는 아시아 밴드 최초로 세계 최대 국제 뮤직 마켓 WOMEX(워맥스)에 2년 연속 선정된 바 있다. 동양고주파

“기본적으로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는 데다 한국에서 장단을 배우게 되니까 자연스럽게 곡이 나왔어요. 무엇보다 연주할 수 있는 곡이 많아야 보다 많은 무대에 설 수 있잖아요. 저를 포함해 제자들이 양금 연주에 나서면서 점점 관심을 받게 됐습니다. 양금으로도 많은 것이 가능하다는 걸 국악계가 알게 된 거죠. 그리고 이런 한국 양금을 배우기 위해 중국과 베트남 등 해외에서도 유학 옵니다.”

오는 11월 세계양금축제 한국 유치로 위상 높혀

한국 양금의 토대를 놓은 그는 지난 2013년 대만에서 열린 세계양금축제에 한국을 대표해 처음 참가했다. 이듬해 한국양금협회를 설립한 그는 2019년 세계양금협회 멤버로 승인받은 데 이어 올해 세계양금축제를 한국에 유치했다. 1991년 헝가리에서 설립된 세계양금협회(Cimbalom World Associacion)는 양금과 같은 계열의 악기를 다루는 예술가들의 모임으로 2년에 한 번씩 세계대회를 열고 있다.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대회는 11월 3일 국립국악원과 4~8일 강북문화예술회관에서 콘서트, 학술대회 등이 잇따라 열린다. 세계대회 중 마지막 날에는 38개국 양금협회 대표들이 모두 모여 한국 민요 ‘아리랑’을 연주할 예정이다.

오는 11월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양금대회 포스터.

“제가 세계양금협회에 처음 참가할 때만 하더라도 해외에선 한국 양금을 잘 몰랐어요. 하지만 세계양금협회에 가입하면서 영어명 ‘Yanggeum’을 등록시켰어요. 영어명이 ‘Yangqin’인 중국 양금과 다르다는 것도 확실히 했고요. 최근 전 세계 양금 콩쿠르에서 제 제자들이 우승하는 등 한국 양금의 위상이 많이 올라간 만큼 이번 세계대회를 통해 많은 분이 양금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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