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 애들이 엄마 아빠가 일하러 나가면 자물쇠로 잠긴 오두막에서 홀로 남겨져 있더라고요. 타국에서 애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인신매매 등 범죄로 집 주변이 안전하지 못하니까….”
미얀마 동부 카렌주와 태국 북서부 딱주와 맞닿은 태국 농촌 마을인 매솟에서 16일 만난 신정호(56) 선교사는 미얀마 난민과 이주민이 다니는 난민학교(Learning center)를 2013년부터 설립해 운영하게 된 배경을 기자에게 설명하면서 연신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오랜 군부 정치로 인한 쿠데타, 내전을 피해 본국을 떠나 이웃 나라의 접경에서 불안정하게 살 수밖에 없는 부모와 그 아이를 떠올리면서였다.
소박하지만…안전한 꿈 자라는 미얀마 난민학교
20년 전부터 태국 내 미얀마인을 위한 교회를 세웠던 신 선교사는 12년 전부턴 매솟의 교회 건물을 활용해 난민학교를 운영해왔다. 그가 개척하거나 함께해 온 교회 6곳이 기꺼이 나서주었기에 가능했다. 매솟은 행정 구역상 태국이지만 2만여명 거주 태국인보다 미얀마인이 10배 이상이 산다고 알려졌다. 태국과 연결된 대표적 접경 지역으로 미얀마 난민촌이 있는 곳이기도 하다. 기아대책 이대영 미얀마 지부장은 “2021년 쿠데타 이후 태국으로 이주하는 인구가 전보다 더 늘어났지만, 태국 정부에서 더이상 난민 지위를 인정해 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15일 오전 신 선교사와 이 지부장, 진량제일교회·은혜로교회 등 경북 경산의 교회 두 곳이 함께한 선교 프로젝트 회복의 단기 선교팀이 방문한 체디코 난민학교도 그중 하나다. 유치원부터 초등학생까지 미얀마 아이들 170여명이 작은 교실에 모여 수업을 들었다.
어떤 아이들에겐 난민학교는 배움터를 넘어 집과도 같았다. 돈을 벌기 위해 방콕 등 도시로 떠난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 등에게 맡겨진 아이들이 학교에서 먹고 자기 때문이다. 이날 만난 8살 애니와 에스더시는 교회 건너편 2층에 마련된 공간을 자기 방이라며 기자에게 소개했다. 나무 바닥에 얇은 매트리스가 전부인 그곳은 자매 같은 두 아이의 안전한 보금자리였다.


신 선교사는 “이곳 교회 목사와 전도사님이 부모가 없는 아이 3명과 2명을 각각 입양해 키운다”며 “가진 것이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에게 힘이 되려고 애쓴다”고 했다. 기아대책은 2023년 12월 설립된 미얀마 미야와디센터를 통해 아동 결연뿐 아니라 교실·기숙사 건축, 통학 차량 지원 등으로 매솟의 난민학교를 돕고 있다.

연주와 찬양에 담아 전한 사랑
난민학교는 난민이나 이주노동자 출신 미얀마인의 끊임없는 헌신으로 운영되고 있었다. 학교에 걸어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기에 교사나 교회 교역자들이 픽업트럭을 개조한 통학 차량으로 등하교를 맡고 있다. 신 선교사는 “미얀마인이 다니는 교회이기에 재정이 넉넉하지 못해 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10년 넘도록 월급 없이 아이들을 가르쳐 온 교사도 있다”고 했다. 기아대책 지원으로 지난해부턴 교사와 직원 월급을 준다고 했다. 이밖에 기아대책의 후원으로 매솟에 그레이스신학교가 설립됐고, 현재 미얀마 신학생 57명이 숙식을 하며 신학 교육을 받고 있다.

매솟의 난민학교 6곳에서 공부하거나 숙식하는 미얀마 아이들은 1000명이 넘는다. 이번 한국 단기선교팀은 15일과 16일 양일간 난민학교 5곳을 찾으며 학생 수백명을 만났다. 가장 먼저 방문한 맥컨켄 난민학교에선 두 교회의 사모가 신 선교사의 부탁 따라 즉흥 찬양 무대를 선보이기도 했다. 피아노를 전공한 은혜로교회의 화덕신 사모 연주에 성악을 공부한 이은숙 진량제일교회 사모가 찬송했다. 이 사모는 아이들에게 “저도 작은 어촌마을에서 어렵게 자랐던 경험이 있다. 가난하고 힘들었지만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학생들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다”며 울먹였다.


해와 비를 피하는 지붕과 벽이 있는 장소가 교실일 정도로 열악한 환경의 난민학교가 많았지만, 그곳에서도 아이들의 꿈은 조금씩 자랐다. 지난달 시작된 새 학기부터 체디코 난민학교에 등록한 지민퓨(15)군은 “얼마 전까지 막노동했지만 이곳에서 처음 공부해보니 행복하다”며 음악 교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전했다. 이 학교의 준벨 교장은 “아이들이 공부뿐 아니라 믿음 안에서 삶을 성장시킬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농장 앞 오두막에 지내도 “학교 꼭 가고파”
단기선교팀은 15일 오후 3시쯤 소오 난민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가는 10살, 5살 남매 집을 동행했다. 옥수수 농장 앞에 간이로 지어진 오두막에서 부모와 함께 지내고 있었다. 긴 나무판자를 얼기설기 엮어 공중에 띄워진 바닥은 발이 푹푹 빠지기 일쑤였다. 남매의 아버지는 태국인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일하며 근근이 생계를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공립학교를 보낼 형편이 되지 않는 남매의 부모에겐 난민학교는 꼭 필요한 곳이다. 엄마 모싼(36)씨는 “오늘 아침 첫째가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학교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몸이 안 좋아도 학교는 꼭 가고 싶어 한다”고 전했다. 비좁은 탓에 선교팀을 대표해 집에 들어간 진량제일교회 김종언 목사는 “이곳 아이들에게 어떤 도움이 필요할지 앞으로 더 고민할 것”이라며 “세상에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선한 손길이 절실한 곳을 이번 기회로 알게 돼 감사하다”고 했다.

단기선교팀은 다음날인 16일 오후 매타오 난민학교에 다니는 9살인 모세의 집도 찾았다. 미얀마 카야주에서 살던 모세 가족은 군부 공격으로 집이 불탄 뒤 긴 피난 여정 끝에 매솟에 정착했다. 폭격을 기억하는 아이는 한때 실어증에 걸릴 정도로 힘들어했다. 방콕으로 일하러 간 남편을 대신해 아이와 어머니와 지내는 파마나(40)씨는 “언제 붙잡혀 갈지 모르는 불안감이 크다. 평화가 찾아와 미얀마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기도 제목을 나눴다. 은혜로교회의 이창용 목사는 “하나님께서 반드시 어두운 터널을 지나 좋은 길을 열어주실 것을 믿는다”고 기도했다.

“미국 유학도 준비…난민도 잠재력 펼쳤으면”
신 선교사와 현지 교회, 기아대책은 현재 초등학생 위주의 난민학교 교육을 확장해 중고등학교 교육과의 연계, 직업학교 설립 등에 대한 청사진도 구상하고 있다. 이 지부장은 “아이들이 성장해 사회에서 적응하고 자립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됐다”며 “교사 교육과 지원 등 아직 부족한 게 많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했다. 이어 “1인당 GDP가 1200달러가 채 되지 않는 동남아시아의 최빈국인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아지길 기도한다”고 했다. 16일 방문한 매카사 난민학교엔 대학 입시를 염두에 두고 GED를 공부하는 10대들도 있었다.

신 선교사는 아내인 이은영 사모와 함께 매솟뿐 아니라 미얀마 냐웅쉐 등 경제적 자립이 필요한 미얀마인을 위한 교회를 세우고, 그곳의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두 사람은 미얀마인을 대상으로 한 20년 넘은 선교 활동으로 미얀마어에 능통하다. 신 선교사는 “생일잔치를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아이들에게 ‘태어난 것 자체가 축복’이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다”며 “아이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고 했다.


이번 단기선교에 참여한 두 교회의 담임 목사는 매솟의 그레이스신학교와 미얀마인이 예배하는 은혜교회에서 각각 설교를 전했다. 김 목사는 “1970년대 초등학교 시절 시골교회의 모습과 미얀마 아이들이 다니는 교회와 학교의 모습이 크게 다르지 않다”며 “미얀마 아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주고 싶은 그 마음을 놓고 기도할 것”이라고 했다. 이 목사는 “여러 난민학교를 방문하면서 ‘이 아이들이 미얀마의 미래이겠구나’하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며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시절을 지나온 한국이 미얀마의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매솟(태국)=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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