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집권 후 노골화된
불법이민, 이슬람 희생양 삼기
'우리' 대 '그들'로 갈라치기
시민사회 위협하며 무력시위
언론과 대학 집요한 공격
대법원, 견제 대신 트럼프 도와
"美, 빠르게 파시즘 전락"
예일대 교수들 집단 캐나다행
미국, 민주주의의
모범 아닌 반면교사 됐다
불법이민, 이슬람 희생양 삼기
'우리' 대 '그들'로 갈라치기
시민사회 위협하며 무력시위
언론과 대학 집요한 공격
대법원, 견제 대신 트럼프 도와
"美, 빠르게 파시즘 전락"
예일대 교수들 집단 캐나다행
미국, 민주주의의
모범 아닌 반면교사 됐다
티머시 스나이더(56) 교수는 중유럽과 동유럽 역사 연구에서 독보적 업적을 쌓은 세계적인 역사학자다. 저서 ‘피에 젖은 땅’은 유럽 대륙 중앙부에서 1400만 명을 살육한 히틀러와 스탈린 체제의 악(惡)을 다뤘다. ‘블랙 어스’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기존 인식을 뒤집는 새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한국어로도 번역된 두 책 읽기는 고통스럽다. 신음하고 전율하게 된다.
스나이더의 부인인 마시 쇼어(53) 교수도 동유럽 문화와 지성사 전공의 저명한 역사학자다. 제이슨 스탠리(55) 교수는 철학자다. ‘파시즘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역사지우기: 파시스트들은 미래를 통제하기 위해 어떻게 역사를 다시 쓰는가’를 출간했다. 3명의 공통점은 지난해까지 미 예일대의 ‘간판 학자’였고, 손꼽히는 파시즘 전문가라는 점이다. 이들은 모두 예일대를 떠나 지금은 캐나다 토론토대에 정착했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재집권한 뒤 시작된 이들의 ‘집단 이주’는 미 지성계에 충격을 줬다. 이들이 언론을 통해 밝힌 미국을 떠난 이유는 이렇다. ‘트럼프 치하의 미국이 파시즘 체제로 떨어지고 있다. 뚜렷하게, 그리고 빠르게.’
지난 5월 뉴욕타임스에 올린 짧은 동영상에서 쇼어 교수는 “1933년 독일의 교훈은 일찍 빠져나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늦으리라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1933년은 아돌프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해다. 나치 독일에서 벌어진 일이 트럼프 치하 미국에서 재현될 수 있다는 뜻이다. 스탠리 교수는 “파시즘 독재로 추락하지 않은 나라에서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이주를 결심했다”고 했다.
이들의 ‘경고’에 대해 지나친 비관론이라는 비판도 있다. 하지만 경험적 증거는 점점 이들에게 힘을 실어준다. 트럼프 생일에 워싱턴DC에서는 탱크를 앞세운 군사 퍼레이드가 펼쳐졌다. 경찰이 별 문제없이 대응하고 있는 LA 시위 진압을 위해 트럼프는 주방위군을 배치했다. 해병대에까지 ‘출동 준비’ 명령이 내려졌다. 쇼어 교수는 이에 대해 폭력 사태를 조장해 계엄령을 정당화하려는 ‘도발’이라고 했다. 1920~30년대 이탈리아와 독일 등에서 파시즘이 발호할 때 전형적으로 밟은 수순이라는 것이다.
파시즘의 바탕에는 ‘우리’ 대 ‘그들’로의 갈라치기 정치가 있다. 우리와 다른 그들을 동료로서 부정함은 물론 결국은 ‘비인간’으로까지 몰아가는 차별의 논리다.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에게 1차적으로 ‘그들’은 불법 이민자, 동성애자, 성전환자, 이슬람 신자들일 것이다. 하지만 그 범위가 모든 이민자, 유색인종으로 확대될 조짐이 적지 않다. 최근 전해진 한 장의 외신 사진은 이들의 경고가 허언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준다. 악어가 득실거리는 플로리다주 에버글레이즈 습지 한가운데 신설되는 불법 이민자 수용소를 방문한 트럼프가 농담하며 웃고 있는 사진이다. 이러한 엽기적인 발상과 잔혹함의 근저에는 ‘그들’인 불법 이민자는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파시스트 정치는 교육, 전문지식, 언어를 집요하게 공격한다. 전문지식과 수준 높은 공적 언어가 없으면 민주주의는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를 공격함으로써 공적 담론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프로파간다로 조작된 가상을 현실로 인식하게 만든다. 트럼프 행정부의 하버드대 등 주요 대학에 대한 협박과 주류 언론에 대한 공격은 이러한 파시즘의 특성에 꼭 들어맞는다.
그렇지만 미국엔 견제와 균형의 마지막 보루 사법부가 있지 않나. 하지만 보수 6명 대 진보 3명으로 ‘고착된’ 대법원은 트럼프의 사법부 무시 성향을 오히려 조장하는 판결을 잇달아 내리고 있다. 특히 지난달 27일 대통령의 행정명령이 불법이더라도 이를 막을 수 있는 하급 연방법원의 권한을 제한한 것은 삼권분립의 토대를 흔들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나이더 교수는 “두말할 것도 없이 트럼프는 파시스트”라며 “그럼에도 그를 막지 못한 것은 트럼프의 존재를 증폭시켰을 뿐 그 결과를 짚어내지 못한 사법부, 언론 등 미국의 주요 기관에 상당한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제는 인정할 때가 됐다. 미국 헌정이 근대 민주주의의 모범이었던 시대는 이제 끝났다는 것을. 오히려 미국 정치체제는 한국 정치와 사회에 반면교사가 돼야 한다. 특히 국회와 행정부, 대통령 권력을 모두 한 당이 독점한 지금의 한국에서 더욱 그렇다. 민주주의는 태생적으로 생각보다 훨씬 취약하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생생한 교훈으로 삼아야 한다.
배병우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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