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니스트는 왼손으로 음정 조절 밸브를 누르고 오른손을 나팔에 손을 넣어 음색과 음량을 변화를 조절한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두 팔이 없는 독일 출신 호르니스트 펠릭스 클리저(31)는 왼발을 이용해 밸브를 조작하고 오른손의 역할은 입술로 대신한다.
오는 9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IBK챔버홀에서 리사이틀을 여는 클리저는 서면 인터뷰를 통해 “사람들은 누구나 약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약점은 강점이 될 수 있다”면서 “장애인은 비장애인보다 약점이 추가된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가진 한계는 결국 스스로 부여한 것”이라고 피력했다.
클리저는 5살 때 우연히 들은 호른의 음색에 매료돼 부모님을 졸라 호른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13살 때인 2004년 하노버 음대 예비학생이 됐고 3년 후 정식 입학했다. 이어 2008~2011년엔 독일 국립 유스 오케스트라에서 활동하며 프로 연주자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착실히 밟아왔다….
“호른의 가장 흥미로운 점은 다양한 음색의 연주가 가능하다는 겁니다. 호른 연주자가 한 음만 연주해도 단번에 매우 특별한 분위기가 만들어지거든요. 다른 악기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저는 호른으로 다양한 감정을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좋습니다. 어쩌면 그래서 어린 나이에 호른이라는 악기에 관심을 가졌던 것 같아요.”
클리저를 단순히 ‘장애를 극복한 음악가’로 조명해서는 안된다. 그는 22살인 2013년 발표한 첫 앨범 ‘꿈,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낭만음악’으로 이듬해 독일의 저명한 음악상인 에코 클래식상 ‘올해의 영 아티스트상’을 비롯해 다양한 상을 받았다. 지난해부터는 영국 본머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 음악가로 활동하고 있다.
“악기를 배우다 보면 자신에게 자주 실망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든 음악가가 마찬가지여서 주기적으로 좌절의 순간을 경험하죠. 관건은 그런 상황에 어떻게 대처하느냐입니다. 포기와 도전 가운데 하나죠. 음악만이 아니라 인생의 모든 일이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삶이 재밌는 것 아닐까요?”
호르니스트가 된 클리저의 꿈은 ‘음악으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다. 2013년 자신의 이야기를 담은 책 ‘각주: 세상을 정복한 팔 없는 나팔수’를 출간한 뒤 자신처럼 양팔을 쓸 수 없는 음악가들을 위한 활동을 지원하는 것도 꿈의 연장선상에 있다. 그가 학생들의 멘토로 적극 나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주를 얼마나 잘하는지 증명하는 것보다 사람들의 삶에 기쁨과 용기를 주기 위해 연주하는 것이 제겐 가장 중요해요. 그래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 즐겁습니다. 누군가가 길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건 매우 중요한 일이잖아요. 사람마다 장점과 약점이 있는데,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학생의 능력을 함께 찾아내는 게 제 역할입니다.”
클리저는 2015년 금호아트홀 연세 개관 음악제에 초청받은 이후 지금까지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 관객과 4년 만에 만나는 이번 내한공연에선 슈만, 뒤카, 슈트라우스, 베토벤 등의 프로그램을 선보일 예정이다. 피아니스트 조재혁이 함께 무대에 오른다. 클리저는 “이번 프로그램은 호른과 피아노를 위한 작품으로 구성했다”며 “위대한 작곡가들이 남긴 호른 작품들이 많다. 이런 작품들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말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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