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혈장 치료제 개발에 필요한 완치자의 혈장 확보가 더이상 늦어져선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바이러스를 무력화하는 혈장 내 중화항체 수치는 감염 후 3~4개월까지 높게 유지되다가 갈수록 줄어드는 경향을 보여 ‘골든 타임’을 놓치면 치료제 원료로 효용성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코로나19 완치자의 혈장 확보 작업은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가동되는 혈장 채혈 인프라가 부족한 데다 혈장 기증을 약속했다가 중도 철회하는 사례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2일 방역 당국과 의료계에 따르면 혈장 공여를 신청한 코로나19 완치자는 269명이며 채혈까지 완료한 인원은 109명이다. 전체 완치자(1만1684명)의 0.9%에 불과하다.
혈장 공여는 1차로 의료기관을 방문해 코로나19 검사, 중화항체 존재 여부 검사, 감염병(B·C형 간염, 에이즈, 매독 등) 검사를 받고 적격자에 한해 1주일 뒤 혈장 채혈하는 과정으로 이뤄진다.
전문가들은 완치자의 혈장을 조기에 대량 확보하는 것이 치료제 상용화의 필수 요건이라고 본다. 그런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는 기준이 되는 중화항체는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 같은 코로나바이러스 계열인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의 경우 발병 4개월째에 가장 높은 중화항체 역가(세기)를 보였고 16개월 후부터 감소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코로나19 바이러스의 중화항체 역가와 지속 기간은 아직 명확하지 않지만 더 짧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치료제 양산을 위한 임상시험에는 100~130명의 혈장이 필요하다. 하지만 사람마다 생성된 중화항체의 양과 질이 다르기 때문에 최대한 많이 확보할수록 임상시험 착수 및 개발 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 한 감염병 전문가는 “국내 감염자가 2월 중순 급증해 한 달여간 확산됐기 때문에 이때 걸렸다 회복된 사람들은 지금이 중화항체가 가장 높은 때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방역 당국은 올해 중 혈장 치료제 개발을 목표로 세웠지만 혈장 확보 속도가 늦어지고 있어 실제 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현재 혈장 채혈 가능 의료기관은 수도권 1곳, 대구·경북 3곳 등 모두 4곳뿐이고 혈장 채혈 장비(플라스마 페레시스)는 5대가 전부다. 또 의료기관 1곳당 하루 5명씩, 최대 20명밖에 혈장 채혈을 할 수 없다. 대구 지역 일부 신청자는 채혈 대기 상황이 빚어지는 걸로 알려졌다. 의료계에서는 환자 치료에 집중해야 할 병원이 채혈 작업까지 떠맡는 건 역부족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도에 기증을 포기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경북대병원은 지난달 공여 신청자 45명 중 25명만 최종 채혈했다. 이 병원 감염내과 김신우 교수는 “탈락자 3분의 1은 간 기능 이상이나 중화항체 기준에 못 미쳐 부적격 처리됐고 3분의 2는 기증 동의를 철회했다”면서 “중간에 마음이 바뀐 이들이 생각보다 많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혈장 채취 인프라를 갖춘 적십자사의 헌혈 버스나 헌혈의 집을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방역 당국도 지난 5월 의료기관 외 적십자에서도 가능하도록 지침을 완화했지만 지난달 경북대병원에 헌혈 버스 1대가 지원된 게 전부였다. 적십자사는 혈장 채혈 장비를 갖춘 헌혈 버스 3대를 보유 중인데 버스마다 4~6개의 장비를 갖고 있어 하루 최대 30명씩 가능하다. 헌혈의 집도 대구 경북에 11곳, 수도권에 62곳이 있다. 다만 이들 장소에서 채혈이 가능하려면 공여자의 1차 검사 정보가 적십자에 제공돼야 하는 등 정책적 뒷받침이 따라줘야 한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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