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듀스 출신 고(故) 김성재의 돌연사를 재조명하기로 했던 SBS ‘그것이 알고싶다’ 방송분이 결방됐다. 그의 전 여자친구가 제기한 방송금지가처분신청을 방송 하루 전인 2일 법원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24년 동안 밝혀지지 않은 한 젊은 스타의 죽음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새삼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스물셋 스타의 죽음…사건의 재구성
친구 이현도와 함께 1990년대 초 듀스로 데뷔한 김성재는 1995년 팀 해체 이후 솔로 활동을 예고하며 미국에서 귀국했다. 1995년 11월 19일 솔로 무대를 성공적으로 마친 그는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에 위치한 스위스 그랜드 호텔 별관 57호 객실에서 휴식을 취했다.
당시 객실에 있던 사람은 김성재, 미국인 백댄서 2명, 한국인 백댄서 4명, 매니저 이모씨, 김성재의 여자친구 김모씨 총 9명이었다. 이들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밤이 깊어지자 객실에서 잠이 들었다. 가장 먼저 백댄서 6명이 먼저 잠자리에 들었고 새벽 1시쯤 매니저 이씨가 빨래 건조기를 작동시킨 후 타이머를 맞추고 방으로 들어갔다. 거실에 남아 있던 사람은 김성재와 여자친구 김씨뿐이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매니저 이씨는 잠에서 가장 먼저 깼다. 이씨는 소파에 누워있는 김성재를 깨웠지만 그는 이미 사망한 상태였다. 1995년 11월 20일 오전 7시5분. 스물셋 김성재가 주검으로 발견된 시간이다. 놀란 이씨는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김성재가 청장년급사증후군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했다. 즉 원인 불명의 돌연사라는 것이 당시 경찰의 입장이었다.
돌연사→살인… 28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만든 반전
의문사로 김성재 사망 사건을 마무리하려던 경찰은 1995년 11월 21일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부터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었다. 김성재의 오른팔에서 사망 전 3일 이내에 약물을 주사한 것으로 추정되는 28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다고 했다.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 순간이었다. 경찰은 김성재가 약물 투여 후 돌연 쇼크사했을 가능성을 열어 두고 혈액과 피부조직 등을 채취해 정밀검사를 의뢰했다.
경찰이 지목한 유력한 용의자는 여자친구 김씨였다. 경찰은 김씨가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 동물마취제로 쓰이는 졸레틸과 동물 안락사용 약물인 황산마그네슘을 구입한 정황을 확보했다. 또 경찰은 김성재의 부검 결과가 나오기 직전 동물병원 원장에게 자신이 약물을 구입한 것을 말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한 사실도 확인했다. 김씨는 김성재의 어머니에게도 “부검의에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말해달라”고 부탁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씨는 혐의사실을 강력히 부인했다. 김씨는 약품을 구입한 사실은 인정했지만 살해 목적이 아니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산 것이라고 항변했다. 김씨는 언론들과의 인터뷰에서 “치과 국가고시에 떨어져 죽고 싶다는 생각에 졸레틸을 샀다가 다음날 아파트 앞 쓰레기통에 약품을 버렸다”며 “결혼까지 약속한 김성재를 죽일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김성재의 어머니에게 심장마비로 사망한 것으로 말하게 한 것에 대해서는 “어머니가 부검을 원하지 않아 그렇게 말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또 홀로 김성재와 거실에 남아서 무엇을 했냐는 질문에 “당시 새벽 3시 40분쯤 호텔을 나와 집으로 갔다”며 “당시 김성재는 자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검찰은 김씨를 살인 혐의로 기소했고 1심 재판부는 1996년 6월 5일 김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애인 김성재 사망추정시간에 김성재와 함께 스위스 그랜드 호텔에 있었다고 인정했고 살인에 사용된 졸레틸을 구입한 사실을 시인한 것을 살인의 증거로 인정한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김씨와 결혼까지 약속한 김성재가 가수 활동을 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누리고 여성 팬들에게 많은 관심을 받아 김씨를 멀리하자 김성재를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에도 손을 들어줬다.
무기징역→무죄…항소심서 뒤집힌 이유
김씨에게 살인죄가 적용된 지 5개월 만인 1996년 11월 5일, 김씨에게 무죄가 선고됐다. 당시 2심 재판부는 1심 재판부와 전혀 다른 해석을 내놓았다. 2심 재판부는 당시 판결문에서 “김씨가 김성재를 살해할 동기를 충분히 갖고 있다는 개연성만으로는 김씨의 유죄를 인정할 수 없다”며 “김성재를 살해했다고 확신할 만한 정도의 명백한 증거도 없다”고 밝혔다.
2심 재판부가 김씨의 유죄를 인정하기 어렵다고 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만약 김씨가 약물을 구입해 김성재를 살해하려 했다면 왜 자신을 잘 아는 집 근처 동물병원에서 약물을 샀겠느냐는 것이다. 재판부는 또 동물병원 원장을 만나 구입 사실을 말하지 말라고 부탁한 것도 김씨가 만약 진짜 범인이라면 경찰의 의심을 살 행동인 만큼 오히려 유죄의 반증이라고 봤다.
당시 한 수의사도 언론 인터뷰를 통해 “김씨가 구매한 졸레틸의 양으로는 건강한 젊은 친구가 죽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2심 재판부 역시 김씨가 구입한 졸레틸 5㎖ 한 병은 작은 개 한 마리를 안락사시킬 양으로 성인 남자가 이정도 양에 사망했을 리는 없으며 김씨가 추가로 약물을 구입했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고 강조했다.
김씨는 이 같은 2심 재판부의 판결에 따라 김성재를 살해했다는 직접적인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김씨는 가장 유력한 용의자로 체포된 지 1년 만에 풀려나게 됐으며 김성재의 죽음은 지금까지 의문으로 남게 되었다.
135분→또 135분… 건조기는 알고 있다?
김성재 사망 사건이 일어난 새벽 1시 매니저 이씨가 방으로 들어가 잠들기 전 돌린 건조기는 135분짜리 건조기다. 135분이 지나면 자동으로 작동이 멈춘다. 이 때문에 이씨는 밤새 건조기가 돌아갈 걱정 없이 잠자리에 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새벽 6시에 일어나 거실로 나왔을 때 여전히 건조기가 돌고 있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미 작동이 끝났던 건조기를 누군가 다시 작동시켰다는 뜻이다. 매니저 이씨가 돌린 건조기가 끝났을 시간과 이씨가 깨어있었을 시간을 계산해보면 범행은 대략 새벽 3시45분에서 새벽 6시 사이 벌어졌을 것으로 추측된다. 2심 재판부는 “건조기의 타이머는 범인에 의해 작동된 것으로 보여지고 그 목적은 범행 실행 시에 일어날 수 있는 소음이나 범행 현장 이탈 중 문에서 나는 소음 등을 중화시킬 목적이라고 추단된다”고 밝혔다.
135분짜리 건조기를 다시 작동시킨 사람이 누군지는 여전히 알 수 없다. 당시에도 객실 안에 있던 사람이었는지 외부에서 몰래 들어와 벌인 일인지조차 특정할 수 없었다. 사건 초기 경찰은 김성재를 돌연사한 것으로 파악한 탓에 외국인 댄서 2명은 김성재가 숨진 다음 날 곧바로 출국했다. 외부인이 객실에 침입했을 가능성에 대한 수사 역시 이뤄지지 않았다.
강태현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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