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배터리 업체들이 전기차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여파로 위기를 맞았지만 정보보호 관련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차세대 기술 확보를 위한 연구·개발(R&D)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후발 기업과 기술 격차 유지에 총력을 기울이는 모습이다.
9일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정보보호공시 종합포털에 따르면 지난해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정보보호 부문 투자액은 376억원으로 전년(327억원) 대비 15% 증가했다. 정보보호 부문 투자는 글로벌 주요 시장에서 활동하는 특허 전문가를 확보하고 지적재산권(IP)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데 들어간 비용으로 볼 수 있다.
가장 많은 자금을 투자한 배터리 업체는 LG에너지솔루션이다. LG에너지솔루션의 지난해 정보보호 부문 투자액은 212억원으로 전년(147억원) 대비 4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삼성SDI는 100억원에서 112억원으로 12% 늘었다. 다만 SK온은 52억원으로 전년 대비 35% 감소했다.
특히 LG에너지솔루션과 삼성SDI는 지난해 전기차 시장 성장세 둔화와 경쟁 심화로 인해 실적이 크게 악화했음에도 기술 보호 투자를 늘렸다. LG에너지솔루션은 지난해 4분기 영업손실 2255억원을 내며 2021년 3분기 이후 3년여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도 지난해 4분기 2567억원의 영업손실을 내 약 7년 만에 적자 전환했다.
배터리 업계가 기술 보호 관련 투자를 늘리는 건 차세대 기술력 확보가 곧 경쟁력으로 이어진다는 판단에서다. 최근 주요 배터리 업체 간 기술 격차가 줄어들며 전고체 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중국과의 기술 확보 경쟁에 따른 갈등도 격해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중국과 유럽 등 배터리 후발 기업의 특허 침해가 급증하고 있다며 소송도 불사하는 등 강경 대응을 예고한 바 있다. 이 회사는 한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기업의 제품을 분석한 결과 코팅 분리막, 양극재 등 핵심 소재와 공정에서 자사 특허를 무단 사용한 것이 30건 이상 발견됐다고 밝혔다.
중국 배터리 1위 제조업체 CATL도 지난달 3일 중국 3위 배터리 업체인 CALB에 IP 침해를 이유로 소송을 제기하는 등 최근 자국 업체를 대상으로 특허 침해 소송전을 이어가고 있다. 실적 부진을 극복하기 위해 중국이 선점한 리튬인산철(LFP) 배터리 시장에 다시 도전장을 내미는 국내 업체들도 자칫 소송전에 휘말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2022년 기준 LFP 관련 특허 출원에서 중국의 비중은 63%에 이른다. 한국은 10% 수준이다.
업계 관계자는 “가격 경쟁력에서 중국에 밀리는 국내 업체들은 차세대 기술 확보가 생존으로 직결된다”며 “R&D를 통한 기술 선점은 당연하고 핵심기술 보호를 위한 투자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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