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 실용주의의 명과 암

Է:2025-07-18 0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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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민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


올해 대선에서 당선된 이재명 대통령은 국정 운영의 핵심 기조로 실용주의를 내세웠다. 외교, 경제, 복지 전반에 걸쳐 이념이나 가치보다 효과를 우선하는 유연한 방식은 많은 국민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핏발 선 눈으로 거친 언어를 내뱉던 이념의 사회가 가고, 이제는 서로 먹고사는 것을 걱정해 주는 따뜻한 세상처럼 느껴진다.

실용주의란 결과나 유용성을 진리 판단의 기준으로 삼는 태도다. 그런데 실용주의가 ‘가치’를 배제한다지만, 가치를 완전히 배제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예컨대 민생 경제를 최우선으로 한다고 할 때, 이미 “경제가 최우선이다”라는 가치를 포함하는 셈이다. 실용주의를 말하는 사람이 어쩌면 자신의 가치를 확산하기 위해 실용주의라는 가면을 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는 단순히 경제적 성과만을 중시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안도감을 준다. 그는 당선 연설에서 함께 잘사는 나라, ‘대동(大同) 세상’을 언급하며 공동체적 연대를 강조했다. 대동 세상은 모든 인간의 평등과 공존을 지향하는 사상이다. 유교 정치철학을 본인의 경험 안에서 녹여냈기에 신뢰할 만하다.

또한 최근 이 대통령은 채무 조정 정책을 발표하며 성경의 ‘주빌리(Jubilee)’ 정신을 언급했다. 주빌리 혹은 희년(禧年)은 이스라엘 공동체가 50년마다 토지를 원래 주인에게 돌리고, 노예를 해방하는 제도로서 단순한 경제정책이 아니라 공동체 회복과 정의의 상징이다. 이 대통령이 이 개념을 언급한 것은 실용주의 안에 공동체적 가치와 도덕적 상상력을 담으려는 시도를 보여주는 신호다. 구약성경을 아는 기독교인으로서 한편으로는 기쁘고, 다른 한편으로는 부끄럽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실용주의에는 두 겹의 경계가 필요하다. 첫째는 실용주의 자체의 불안정성이다. 실용주의는 아무래도 효과를 기준으로 삼기 때문에 상황에 따라 기준을 바꾸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국민 여론에 불리하거나 정치적 타격이 예상되면 처음의 원칙이나 철학은 슬그머니 뒤로 밀릴 수 있다. 신임 대통령의 공동체적 가치를 내재한 실용주의와 불법적 계엄령에 동조한 기회주의적 합리성 사이에는 엄청난 간격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그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권력의 단맛에 길들고 사람의 장막에 둘러싸이다 보면 점차 공동체적 가치는 쪼그라들고 눈앞의 이익을 좇게 된다.

둘째는 공동체주의 자체의 위험이다. 이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를 강조하는 점은 분명 고무적이다. 그러나 공동체가 언제나 선을 분별할 지혜와 선한 방향을 추구하는 의지를 갖춘 것은 아니다. 때로는 다수의 두려움과 분노가 ‘민의’로 포장돼 소수자나 약자를 배제하는 일이 벌어진다. 예컨대 혐오에 근거한 갈라치기, 차별금지라는 미명 아래 동성애를 합법화하려는 움직임, 국익을 위해 군비를 확대하려는 정책 등이 그렇다. 모두 공동체의 목소리를 빙자하지만, 그 안에 담긴 방향이 옳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실용주의적 선택은 말할 것도 없고 공동체의 선택도 늘 옳은 쪽을 향하지는 않는다. 실용주의가 제 역할을 하려면 공공성이 있어야 하며, 공동체가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가치와 도덕성 위에 확고히 서야 한다. 그리고 확고한 가치와 도덕성을 가르치고, 이를 실천할 수 있는 영적 에너지를 주는 것이 바로 종교다.

정치는 현실을 움직이지만 종교는 현실의 방향을 묻는다. 실용주의가 유능한 도구가 되려면 그 방향을 비추는 종교적 상상력이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대통령께서 기왕 대동 세상과 주빌리를 언급했으니 그 실용적 효용성만을 취하지 말고 이 사상들이 가진 종교적 연원을 천착했으면 한다.

장동민 백석대 기독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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