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36)씨는 말로만 듣던 ‘노쇼 사기’ 피해를 당할 뻔했다. 김씨는 지난 12일 A씨로부터 20명 단체 예약 전화를 받았다. A씨는 자신을 서울의 한 대학병원 교수로 소개하면서, 병원 로고가 박힌 명함을 메시지로 보냈다. 이틀 뒤 예약 당일 오전 A씨는 “센터장님이 좋아하는 와인을 준비해야 하는데, 개인이 아닌 사업자만 살 수 있다”며 “3병만 대신 구매해주면 70만원씩 웃돈을 얻어 식당에서 현금으로 돌려주겠다”고 말했다. 와인은 병당 200만원이 넘는 고가였다.
수상한 느낌이 든 김씨는 경찰에 문의했고 “전형적인 노쇼 사기로 보인다”며 A씨 번호를 사이버수사대에 신고하라는 답변을 받았다. 경찰 예상대로 A씨는 식당에 나타나지 않았다. 김씨는 “이전에 비슷한 사기 사례를 들은 덕에 와인을 사지 않아 금전적 피해는 면했지만, 몰랐다면 깜빡 넘어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을 노리는 노쇼 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공공기관이나 정치인 등을 사칭해 대규모 예약을 한 뒤 나타나지 않던 게 초기 수법이라면 최근에는 업체가 고가의 제품을 대리 구매하도록 유도하는 식으로 진화했다. 공범 관계인 사칭범과 제품 구매처가 피해자의 돈을 빼돌린 뒤 종적을 감추는 경우가 많다. 일종의 ‘2단계 사기’ 수법이다.
16일 경찰청에 따르면 노쇼 사기 집계가 시작된 지난 1월부터 지난달까지 노쇼 사기 발생 건수는 1957건, 피해액은 250억원에 달한다. 경찰청 관계자는 “노쇼 등 신종 사기로 인한 피해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등 민생 피해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노쇼를 비롯한 신종 사기의 총책이 주로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 거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병원이나 대학교 등 신뢰할 만한 기관 관계자를 사칭하는 수법이 확산되고 있다. 지난달 서울 광운대에서는 교직원을 사칭해 피아노 업체에 발주를 넣고, 피아노에 연결할 케이블을 대신 사달라는 수법으로 2000만원을 편취한 사건이 발생했다. 서울 노원경찰서는 피해자가 돈을 보낸 계좌 명의자 주소가 충북 충주시인 점을 확인해 이달 초 사건을 충주경찰서로 이송했다고 밝혔다. 최근 고려대, 경희대, 한양대, 아주대 등은 교직원을 사칭해 물품을 대량 주문하거나 선결제를 요청하는 사기를 주의하라고 공지했다.
자영업자들은 한순간에 사기 피해자가 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 자영업자들이 모인 한 온라인 카페에는 공무원, 연예인, 프로 스포츠 구단 등을 사칭하는 노쇼 사기 피해를 입었거나 당할뻔 했다는 경험담이 매일 올라오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는 최근 입장문을 내고 “노쇼 사기는 기존의 단순 예약 부도와 달리 수백만원 상당의 피해를 내며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며 “자영업자 줄폐업 속에 이들의 어려운 처지를 노리는 것”이라고 밝혔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보통 공신력 있는 기관이나 유력인은 상대적으로 쉽게 믿는다는 점을 악용해 이들을 사칭하는 것”이라며 “조금이라도 의심이 들면 해당 기관에서 실제로 전화한 게 맞는지 재차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민아 유경진 기자 minaj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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