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초기 채용비리 의혹 등으로 감사를 받다가 중도 사퇴한 뒤 돌연 사망한 한 연구기관장의 유족이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은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숨진 A씨 배우자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 급여 등을 지급하지 않은 처분을 취소하라”고 낸 소송에서 지난 1월 원고 승소 판결했다.
A씨는 지난 2015년 10월부터 과기부 산하 연구원 원장으로 재직했다. 그는 문재인정부 출범 뒤인 2017년 12월∼2018년 2월 국무조정실과 과기부로부터 친인척 채용에 특혜를 줬다는 의혹으로 감사를 받았다.
A씨는 2018년 2월 원장직을 사임했고 산하 연구센터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면서 재기를 노렸다.
하지만 감사원은 같은 해 5월 9일 해당 센터의 실험용 동물 구매 과정을 살피겠다며 추가 감사를 실시했다. 종료된 줄 알았던 채용비리 의혹 감사도 계속됐다.
A씨는 5월 중순쯤 자택에서 심장마비 증세를 보이며 갑자기 쓰러져 숨졌다.
A씨는 사망 전 동료에게 여러 차례 감사로 인한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내가 그만두면 감사가 끝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사망 당일에도 배우자에게 “연구원을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유족은 A씨의 죽음이 업무상 재해에 해당한다며 유족 급여 등을 신청했다.
근로복지공단은 그러나 “업무상 이유로 사망에 이르렀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족은 이에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유족 측은 법정에서 “A씨가 불명예 퇴진 후 일반연구원 지위로 일하면서 주위 사람들과 어울리기 힘들어했다. 또 센터에 대한 감사가 실시되면서 연구원직 사직을 종용받아 스트레스가 극심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A씨가 자신의 거취를 고심하던 중 스트레스가 가중돼 심뇌혈관계 질환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판결은 A씨의 업무상 재해 여부를 다룬 만큼 정부 차원의 사퇴 압박이 있었는지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던 것은 아니다.
다만 재판부는 문제가 된 채용비리 의혹에 대해서도 “실제로 채용비리가 존재했는지, 의혹이 어떻게 조사되기 시작했는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당시 A씨를 비롯해 과기부 산하 12개 공공기관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중도에 퇴임했다. 앞서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은 과기부가 환경부에 이어 ‘제2의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주장했었다.
국민의힘 박대출 의원은 지난 2019년 3월 “과기부가 블랙리스트를 작성하고 해당 인사들에 대한 표적 감사를 벌여 사퇴 압박을 가한 것”이라며 “국정조사와 특검 수사도 해야 할 사안”이라고 주장했다.
유영민 당시 과기부 장관은 “과기부는 블랙리스트 같은 것을 만든 적이 없다. 기관장 임면은 이사회에서 하고 장관은 사후 통보를 받고 승인만 한다”고 답했다.
서울동부지검은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의혹과 관련해 산업부를 압수수색하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법조계에서는 검찰이 교육부, 과기부, 통일부의 블랙리스트 의혹에 대한 전방위 수사에 나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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