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정부 ‘환경부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기소된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이 첫 공판기일에 나와 “사직 권유는 직권남용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사직서 제출 권유를 인사권을 발동해 사직시킨 행위로 간주할 수 없다는 취지다. 권한 행사가 없으면 직권남용도 없다는 논리다.
김 전 장관 측은 27일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부장판사 송인권) 심리로 열린 직권남용 등 혐의 1차 공판에 출석해 “인사권의 행사는 인사발령”이라며 “사전에 사직 권유가 있었다고 인사발령 효력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신미숙 전 청와대 균형인사비서관도 “임명이나 해임 권한이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김 전 장관과 신 전 비서관은 2017년 12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환경부 공무원을 시켜 박근혜정부에서 임명된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제출을 요구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이로 인해 환경공단 이사장 등 임원 13명이 사표를 제출했다.
김 전 장관 측은 “‘이제 그만두실 생각 없냐’고 묻는 것과 ‘그만두지 않으면 재미없어’라고 말하는 것은 다르다”며 사직 권고 행위의 강제성 정도에 따라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환경부 공무원들이 각각 담당 임원에게 가서 한 말이 다를 텐데 공소장은 일괄해 직권남용으로 본다”며 “증인신문에서 구체적 판단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김 전 장관 측은 또 “임원 중 2명을 제외하고는 이미 임기가 종료돼 후임자가 임명될 경우 바로 임기가 끝나는 사람들이었다”며 “실제로 일부는 사직서를 제출하고도 그대로 업무를 했으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했다’는 법리와도 맞지 않는다”고 했다. 신 전 비서관 측도 “환경부 내에서 일어난 일을 피고인이 알지도 못하고, 환경부와 공모한 사실도 없다”며 공소사실을 부인했다.
재판부는 검찰이 김 전 장관의 지시에 따라 사표제출을 요구했던 공무원들을 기소하지 않은 것을 비판하기도 했다. 검찰은 당초 공무원들은 지시를 받았을 뿐 책임이 없다고 판단, 직권남용 피해자로 적었다. 앞서 재판부가 이를 지적하자 검찰은 김 전 장관 등을 간접정범(처벌되지 않는 사람을 도구로 이용해 범죄를 실행한 경우)로, 공무원들을 ‘범죄 도구’로 법리를 재구성했다.
그러자 재판부는 “이들을 기소하지 않으면 선별적 기소라는 비난을 받을 것”이라며 “김 전 장관이 유죄를 받는다면 지시가 위법함에도 실행한 공무원들도 기소하는 게 정의에 맞다”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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