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 전 대통령이 좌파 배제·우파 지원을 국정 과제로 표방한 것 자체는 헌법이나 법령에 위배되지 않는다는 법원 판단이 드러났다.
보수주의 지지자들에 의해 당선된 박 전 대통령이 “좌파들의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 등의 발언을 한 것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라는 취지다. 이런 관점에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정책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박 전 대통령은 서로 공범 관계가 아니라고 법원은 설명했다.
블랙리스트 사건을 심리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0부(부장판사 황병헌)는 31일 판결문을 통해 “박 전 대통령이 문예지나 건전영화 지원 문제 등에 관해 직접 언급·지시한 사실은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그런 지시 자체가 위법한 것은 아니다”며 “위법한 방법으로 특정 문화예술계 개인·단체 지원을 배제하라는 범행 지시로 볼 수도 없다”고 덧붙였다.
법원은 박 전 대통령이 대통령 주재 수석비서관 회의(대수비) 등에서 문화계 좌파 문제를 여러 차례 언급한 사실은 인정했다.
박 전 대통령은 2013년 9월 대수비에서 “국정지표가 문화 융성인데 좌편향 문화예술계에 문제가 많다”며 “특히 롯데와 CJ 등 투자자가 협조를 하지 않아 문제다”는 취지로 발언했다. 그해 12월 당 최고위원 송년 만찬에서는 “좌파들이 가지고 있는 문화계 권력을 되찾아 와야 한다. 나라가 비정상이다”는 취지의 발언도 했다. 2014년 11월 손경식 CJ 회장에게 “CJ 사업이 좌파적 성향을 보인다”는 지적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이런 사정만으로는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범행을 지시·지휘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보수주의를 표방해 당선된 박 전 대통령이 ‘좌파 지원 축소·우파 지원 확대’를 표방한 것 자체가 헌법·법령에 위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블랙리스트를 구체적으로 보고받거나 승인했다고 볼 증거도 부족하다고 했다. 재판부는 “대통령이 블랙리스트 범행 관련 보고서 등을 직간접적으로 보고받았을 개연성은 크다”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보고가 어떤 절차·정도로 보고됐는지 알 수 없다”고 했다.
비선실세 최순실씨 역시 블랙리스트와는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특검은 최씨가 박 전 대통령 국정에 광범위하게 개입하며 ‘좌파 배제’라는 국정 기조를 대통령과 공유했다고 주장한다”며 “그러나 최씨가 블랙리스트 범행을 김 전 실장 등과 공모하거나 가담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했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은 이날 블랙리스트 사건 1심 판결문을 최씨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재판부에 각각 제출했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해서는 공소장 변경 여부를 검토한 뒤 증거로 제출키로 했다. 두 재판부는 법원 판결문인 점 등을 고려해 증거로 채택했다.
양민철 이가현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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