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변재운] ‘경추염좌’의 부도덕성
군에서 운전병을 했다. 운전병이라면 자동차 정비에 대해 웬만큼 아는 것으로 생각하지만 전혀 까막눈이다. 미군부대여서 그런지 모르지만 운전병은 운전만 하고, 차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모토풀’이라 불리는 정비대에 맡긴다. 솔직히 2년여 운전병 생활 동안 보닛 열어본 기억도 별로 없다.
어쨌든 명색이 운전병 출신도 이럴진대 일반 사람들은 어떨까. 차에 고장이 나 정비업체를 찾아가면 그야말로 선생님 앞에 선 유치원생이다. 업소 직원이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설명하지만 알아들을 수가 없다. 모든 것을 그저 업소 직원이 말하는 대로 할 수밖에. 이런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에 소비자는 정비업소만 가면 바가지를 쓴 것 같아 영 찜찜하다.
올 들어 자동차보험의 손해율이 급등하고 있다. 보험업계에 따르면 3월 결산법인인 14개 손해보험사의 올해(4∼10월) 손해율은 역대 최고인 79.6%를 기록했다. 손해율이란 가입자가 낸 보험료 가운데 보험금으로 지출되는 비율을 말한다. 통상 70% 안팎에서 움직이는데 올 들어 급격히 상승하면서 지난 9월에는 무려 88.1%를 기록했다. 손해율이 올라가면 운전자들은 불안해진다. 조만간 보험료가 인상될 가능성을 뜻하기 때문이다.
자동차보험 손해율 급등추세
손해율이 오른 데는 사고율 상승 탓이 크지만 보험료 할증기준액이 높아진 영향도 상당부분을 차지한다. 당국은 올부터 수리비에 따른 보험료 할증기준액을 종전 50만원에서 100만원, 150만원, 200만원으로 다양화해 가입자가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보험료를 조금만 더 내면 수리비 200만원까지는 보험료 할증이 안 되는 만큼 오프라인 보험 가입자들은 대부분 200만원을 선택했다.
그 후 풍경이 달라졌다. 가벼운 접촉사고로 찾아가도 정비업체들이 이참에 다른 것까지 다 수리하라고 부추기는 것이다. 항간에는 190만원짜리 정비상품이 있다는 말까지 나돌고 있다. 고객으로서는 참기 힘든 유혹이 아닐 수 없다. 결국 가입자까지 보험범죄에 가담하게 되는 셈이다.
고객의 보험료가 새는 구멍이 또 병원이다. 2008년 기준 우리나라 교통사고 입원율은 60.6%로 일본(6.4%)의 10배에 육박한다. 일본은 걸어다닐 수만 있으면 통원치료를 원칙으로 하지만 우리는 무조건 병원에 드러눕는다. 특히 ‘경추염좌’의 경우 자동차보험 입원율이 79.2%로 일반 건강보험 입원율(2.4%)의 33배에 달한다. 경추염좌가 무엇인가? 쉽게 말해 뒷목이 뻐근한 것이다. 뒤에서 살짝 박았는데 앞 운전자가 뒷목을 잡고 나오더니 곧바로 입원하는 모습은 전혀 낯설지 않다. 이런 나이롱환자들이 병원 입장에서는 얼마나 고마운가. 게다가 건강보험보다 자동차보험 진료수가가 높으니 병원으로서는 엄청난 수익원이다. 아무리 나이롱환자를 단속하려 해도 병원이 절대로 협조하지 않는 이유다.
국토해양부와 보건복지부는 운전자들에게 백번 절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구조조정 압박으로 골치가 아플 텐데 운전자들이 그 많은 정비업체와 병원을 지탱해주고 있으니 아니 그런가. 2000년 이후 자동차 증가율은 39.3%인데 정비업체 증가율은 52.3%에 달한다. 그들을 먹여 살린 것은 운전자들이다. 더 늘어나도 운전자들은 보험료 더 내서 또 먹여 살려야 한다.
좋은 정책은 효과 담보돼야
운전자들도 부도덕하기는 마찬가지다. 보험료 인상에 그렇게 반대목소리를 높이던 사람들이 교통사고만 당하면 기다렸다는 듯 병원에 드러눕는다. 다친 데가 없어도 상관없다. 인상 찡그리고 뒷목만 잡으면 되니까.
아무리 좋은 제도라도 이를 뒷받침할 도덕성이나, 또는 강제할 수단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정말로 좋은 정책은 확실한 효과를 담보할 수 있어야 한다. 국민의 도덕성도 문제지만 어설픈 정책을 내놓고 국민 탓만 하는 정부야말로 정말 문제 있는 정부다.
변재운 논설위원 jwb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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