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에 잠긴 한가위] 기록적 물폭탄에 수도권 마비… “부실대응 官災” 분통
반지하방 서민·수산시장 상인들 ‘우울한 추석’
“지난봄에 이사 오면서 샀던 침대나 진공청소기를 전부 못 쓰게 됐습니다. 고장나버린 가전제품이나 가구를 보니 마음이 아프네요.”
23일 서울 화곡동에서 만난 정현숙(39·여)씨는 수해현장을 복구하러 온 경찰들이 집밖으로 가재도구를 옮기는 모습을 지켜보다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정씨는 추석 연휴를 맞아 친척이 있는 충남 공주로 내려갔지만 비가 쏟아졌던 지난 21일 반지하방이 비에 잠겼다는 집주인 전화를 받고 서둘러 귀경했다. 당시 참담했던 집안 모습을 회상하던 정씨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손전등을 들고 지하로 내려가는데 허리 높이까지 물이 찼었더라고요. 방에 들어가니 냉장고는 거꾸로 서 있고 TV는 침대 위에 엎어져 있는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속수무책이었어요.”
화곡동 반지하 주택에 사는 한선임(91) 할머니도 눈시울을 붉히기는 마찬가지였다. 폐지나 고철을 주워 생활비를 버는 한 할머니는 그간 모아놨던 폐품이 물난리에 모두 사라져버렸다며 울상을 지었다. 이들이 사는 화곡동 일대에는 당시 시간당 최대 98.5㎜의 폭우가 쏟아졌다. 거짓말 같은 폭우였던 만큼 이틀이 지났지만 주택가 곳곳은 여전히 아수라장이었다.
침수된 주택 대부분은 물을 모두 퍼낸 상태였다. 하지만 수해의 흔적은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골목 곳곳에는 못 쓰게 됐거나 물에 젖은 가전제품, 이불, 옷가지 등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주민들 표정 역시 근심과 절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경찰과 공무원들은 주민들과 하루 종일 복구 작업에 구슬땀을 흘렸다. 하지만 침수 피해를 본 주민들은 당국의 부실 대응을 지적하며 강한 불만을 터뜨렸다. 빗물펌프장 가동이 제대로 되지 않았고, 119도 불통이고 관공서 역시 아무 도움이 못 됐다는 하소연이 잇따랐다.
박봉환(37)씨는 “2시간 이상 무릎 높이로 차있던 물이 오후 5시쯤 30분 만에 거짓말처럼 전부 빠졌다”며 “주민 대부분은 펌프장 가동이 제대로 안 돼 피해가 컸던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불어난 물로 인한 수압 때문에 문이 열리지 않아 반지하방에 갇혀 있었던 배미선(37·여)씨는 119로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배씨는 “발목까지 찼던 물이 5분도 안 돼 무릎 높이까지 올라왔고 가슴까지 차올랐다. 밖으로 나갈 수도 없어 계속 전화를 했는데 받지 않아서 너무 무서웠다”고 말했다. 배씨는 주택 2층에 살던 집주인 아들이 내려와 문을 열어줘 간신히 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
노래방을 운영하는 배병호(50)씨는 “세 차례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아무도 안 받아 결국 이웃 주민에게 양수기를 빌려 지하 노래방에 있는 물을 빼내야 했다”고 화를 냈다. 김복남(53·여)씨는 “2001년에도 침수 피해를 겪은 지역인데 10년도 안 돼 또 수해를 겪었다”며 “물난리를 예방하려는 준비를 해오기나 한 건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서울의 한복판인 광화문까지 물바다로 변했을 정도로 폭우가 엄청났던 만큼 흔적은 화곡동 이외 지역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낙뢰로 변압기가 고장 나 정전됐던 노량진 수산시장 상인들의 피해가 컸다. 정전으로 수족관 작동이 멈추면서 추석 대목을 앞두고 준비했던 킹크랩이나 낙지 같은 해산물이 못 쓰게 됐기 때문이다.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이옥자(52·여)씨는 “낙지만 100마리 정도 죽었고 전복이나 킹크랩도 상태가 안 좋다”고 한탄했다.
박지훈 최승욱 김수현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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