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에 어떤 학점을 주겠느냐”는 질문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첫 답은 “A+(플러스)”였다. 기자가 A+라고 확인하자마자 트럼프 대통령은 A+++++라며 플러스를 5번 연속 속사포처럼 쏟아냈다. 지난 9일 공개된 폴리티코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고공행진 중인 생활비 물가 등으로 여론이 악화되는 현실에 개의치 않는다는 듯 비현실적으로 후한 학점을 셀프로 부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년 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물가였다. ‘4년 전보다 생활이 나아졌느냐’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질문을 그대로 받아 바이든 행정부의 고물가를 몰아붙였다. 취임 첫날부터 물가를 낮출 것이라 자신하기도 했다. 하지만 지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은 3%로 바이든 행정부 마지막 달인 지난 1월과 차이가 없었다. 지난 1월 3% 상승에 대해 오스틴 굴스비 시카고 연방준비은행 총재는 언론 인터뷰에서 “정신이 번쩍 들게 한다”고 했었다.
1년 전 물가로 수세에 몰렸던 미국 민주당은 태세를 전환해 ‘감당할 수 있는 비용(Affordability)’을 앞세워 트럼프 대통령을 몰아세우고 있다. 지난달 뉴욕 시장 선거에서 ‘당신이 감당 가능한 뉴욕을 위해(For a New York you can afford)’를 슬로건으로 내건 민주당의 조란 맘다니가 당선된 데 이어 지난 9일엔 마이애미 시장 선거에서 28년 만에 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뉴욕은 트럼프 대통령의 고향이고, 마이애미는 그의 사저인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가깝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물가에 대한 공격을 민주당의 사기와 날조로 치부하며 애써 외면하고 있다. 그는 같은 날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에서 경제 현안에 대한 연설을 하면서 “물가가 상당 부분 내려갔지만 민주당은 ‘Affordability’라는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며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전임 정부에 책임을 돌리기도 했다. 그는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나는 완전히 엉망진창인 상태에서 물려받았다. 임기를 시작했을 때 물가는 역사적 고점이었다”며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국내의 경우 미국만큼의 상승은 아니지만 최근 물가지수가 들썩이고 있다. 지난 8월 1%대로 내려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9월 2%대로 올라선 후 10~11월 연속 2.4% 상승했다. 특히 1400원을 훌쩍 넘긴 고환율에 의한 물가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어 우려를 더한다. 11월 기록한 수입물가 상승률 2.6%는 지난해 4월 이후 1년7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 9월엔 0.3%였으나 10월 1.9%로 올라선 후 상승폭을 키웠다. 수입물가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는 국제유가가 안정되는 상황에서 수입물가가 오른 건 그만큼 환율 요인이 컸다는 의미다. 수입물가가 국내 물가에 반영되는 데 시차가 있는 것을 감안하면 새해 들어 물가가 튈 위험이 잠재돼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과거만큼 성장이 쉽지 않고, 자산·소득 격차가 커지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에 따른 부담이 균등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일례로 최근 발표된 국가데이터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소득 3분위(상위 40~60%)의 소득 증가율은 전년 대비 1.8% 늘어 2017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낮았다. 이는 지난해 연간 물가 상승률(2.3%)보다 낮다. 물가의 경우 영향이 미치는 범위가 넓고 경제적으로 약한 고리에 먼저 충격이 가해질 수 있는 만큼 물가 대응이 적기에 이뤄지는 게 중요하다. 환율처럼 단기 대응이 쉽지 않은 구조적 요인도 있겠지만, 늦지 않게 미리 대응할 수 있도록 관리할 수 있어야 한다.
김현길 경제부 차장 hg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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