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우리말을 배울 때 가장 힘들어 하는 게 존댓말 사용이다. 일본어, 인도네시아어에 유사한 존칭법이 있다고 하나 복잡 미묘함 면에선 우리와 비교불가다. 외국인이 ‘밥, 식사, 진지’나 ‘나이, 연세’ 등의 호칭을 적절히 사용하려면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서 “선생님, 밥 먹어요”가 왜 부적절한 표현으로 여겨지는지를 그들은 쉽게 이해하지 못한다.
윗사람에 대한 예의, 존중을 중요시하는 한국 특유의 문화 탓일 테지만 정작 한국인들도 원활한 존댓말 쓰기에 애먹고 있다. 카페에서 “주문하신 아메리카노 나오셨습니다”, 골프장에서 “공이 벙커에 빠지셨습니다”는 말이 비일비재하게 나돈다. 상대를 존중한다며 엉터리 존댓말이 양산되고 있다.
자신을 낮추면서 존대식 표현이 발달한 것도 세계적으로 드문 우리말의 특성이다. 대표적인 게 ‘제’ ‘저희’다. 하지만 잘못 사용되는 것도 적지 않은데 하나를 꼽으라면 ‘저희 나라’다. 국립국어원에 따르면 나라나 민족은 남의 나라, 다른 민족 앞에서 낮출 대상이 아니기에 ‘우리’의 낮춤말인 ‘저희’를 써선 안 된다. 1995년 11월 한국의 유엔비상임이사국 진출이 확정된 뒤 공로명 외무부(현 외교부) 장관이 ‘저희 나라의 이사국 진출은’ ‘저희 정부는’ 식으로 말했다. 모 신문사 독자 투고란에 “대외정책의 책임자 입에서 저희 나라라는 말이 나오는 건 저자세 외교의 표출”이라는 항의 글이 올라왔다.
이재명 대통령이 최근 교육부 대상 업무보고에서 “제일 듣기 싫은 게 ‘저희 나라’라는 말”이라며 “‘우리나라’로 써야 한다. 최소한의 교양에 대한 문제”라고 역설했다. 비표준어인 ‘대인배’의 오용도 질타하는 등 마치 국어선생이 학생 꾸짖는 듯한 광경이 이어졌다. 국민들이 우리말 사용 습관을 되돌아보는 효과가 없진 않겠다. 그러나 이런 것쯤은 국립국어원 등에 맡기는 게 낫지 않을까. 일국의 대통령이 한가하게 ‘저희 나라’ 같은 표현을 훈수 두기보다 고환율, 정치개혁, 격랑의 대외관계 해법에 집중하는 모습을 기대하는 이들이 훨씬 많아서다.
고세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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