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박정희 혁명, 이병철 혁명, 이재명 혁명

찰스 디킨스가 박정희를 문학적으로 평가한다면 아마도 다음과 같을 것이다. “최악의 인물이었고, 최고의 인물이었다.” 디킨스의 ‘두 도시 이야기’는 프랑스 혁명을 묘사하면서 “최고의 시절이었고, 최악의 시절이었다”로 시작한다. 박정희가 최악인 이유는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19년 동안 독재를 하며 민주주의를 파괴했기 때문이다.

그가 최고인 이유는 한국의 산업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18세기 후반 영국에서 처음 산업혁명이 일어났고 19세기 서구 다른 국가들과 일본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최초의 산업혁명 후 200년 만에 한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다. 양립 불가능한 최악의 인물이자 최고의 인물이기에 박정희는 앞으로 한국 역사에서 영원한 미스터리이자 딜레마로 남을 것이다.

박정희의 산업혁명은 어떻게 가능했는가. 많은 역사학자와 경제학자가 다양한 설명을 내놓았지만 이들이 놓친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박정희의 산업·대학·정부(산학관) 연계다. 박정희는 울산, 구미, 창원, 여수, 대전 등 수도권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 도시들에서 산업혁명을 일으켰다.

38선에서 멀리 떨어졌다는 지리적 이유 때문이었다. 박정희는 당시 규모가 작았던 기업들을 위해 외자를 유치하고, 중화학공업을 이끌 엔지니어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경북대, 부산대, 전남대, 충남대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당시 이 지방대들은 연세대와 고려대 수준의 대학들이었다. 수도권 집중은 1960년대부터 문제였지만 이를 그나마 완화시킨 것은 지방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났기 때문이었다.

지방 중심의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흐름을 바꾼 사람은 누구인가. 바로 이병철이다. 이병철은 정주영에 비해 과소평가돼 있다. 그가 지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현대의 자동차와 조선은 삼성의 반도체보다 이미지상 거대해 보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병철은 지주의 아들이었으나 젊었을 때는 보잘것없는 청년이었다. 무엇 하나 제대로 이룬 것이 없고, 노름에 방탕한 생활을 한 탕아였다.

26세 때 사업에 결심을 세운 후 정미, 양조, 제당, 비료, 조선, 건설 등 거의 모든 사업에서 성공을 거뒀다. 반도체 공장을 세우기 전인 1982년 그는 72세의 나이로 미국 캘리포니아의 실리콘밸리를 방문했다. 당시 한국 성인 남자의 평균 수명은 63세였다. 모두 반대했지만 그는 죽기 몇 년 전인 73세에 반도체 사업에 뛰어들었고, 1983년 반도체 공장을 수도권에 지었다. 그의 생애 마지막 순간 이병철 혁명이 일어났다. 탕아로 시작해 혁명가로 끝난 이병철의 삶은 개과천선의 상징, 곧 한국의 성 아우구스티누스다.

그후 40여년 동안 반도체가 한국 경제를 이끌었다. 반도체산업의 80%, 엔지니어의 65%, 연구·개발(R&D) 투자의 7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이병철이 반도체산업을 위해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바로 인재였다. 1980년대 이후 산학관 연계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한국 경제는 박정희 패러다임과 이병철 패러다임으로 나눌 수 있으며, 전자는 미국 북동부와 같이 몰락 중이고 후자가 결국 승리했다. 곧 우리는 이병철 시대에 살고 있다. 박정희의 산업혁명은 지방 중심이었고 이병철의 산업혁명은 수도권 중심이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최근 서울 부동산 문제에 대해 “대책이 없다”며 한탄했다. 수도권 집중은 구조적 문제이기에 공급 정책, 금융 정책, 세제 정책이 백약무효라는 뜻이다. 부동산의 지방 분산만이 해결책이다.

이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나. 지방에서 새로운 산업혁명을 일으켜야 한다. 이재명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그가 내세웠듯 지방대를 세계적인 대학으로 만들고 강력한 산학관 네트워크를 만드는 일이다.

아무리 대통령이라 할지라도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렵다. 이 대통령에게 ‘괴테와의 대화’를 권한다. 이 책에서 괴테는 스케일이 큰 사람만이 스케일이 큰 작품을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지방 중심의 강력한 산학관 연계는 4차 산업혁명, 국토 균형발전, 부동산 문제 해결, 지역 의료격차 해소, 교통지옥 해체를 모두 이룰 수 있는 혁명의 진격이다. 이병철이 모든 것을 바쳐 박정희를 넘어섰듯 이재명은 모든 것을 바쳐 이병철을 넘어설 수 있을까. 이재명 혁명은 가능할까. 그는 정녕 위대해질 수 있을까.

김종영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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