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부고니아’와 김성환 장관

한국 영화 ‘지구를 지켜라’를 리메이크한 영화 ‘부고니아’의 출발점은 음모론이다. 주인공 테디는 꿀벌이 사라지는 군집붕괴현상(CCD)의 원인이 외계인 때문이라는 음모론을 믿는다. 실제 CCD는 인류 멸종을 부를 수도 있는 현상이다. 유엔 식량농업기구는 전 세계 식량작물의 75%가 꿀벌과 같은 화분매개곤충에 의존한다고 분석했다. 하버드대 사무엘 마이어 교수팀은 꿀벌 멸종 시 매년 142만명이 사망할 수 있다는 연구도 내놨다. 테디가 외계인을 적으로 인식하게 된 배경이다.

이후 테디가 찾아낸 지구의 적, 외계인은 유명 제약회사 최고경영자(CEO)인 미셸이었다. 증명할 방법으로는 ‘납치’와 ‘고문’을 택한다. 논리적 설파보다는 투박하고 과격한 방식을 내세웠다. 지구를 지켜야 하는데 지금 법을 따질 시간이 없다.

그런데 이 영화 속 모습이 묘하게도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의 정책 기조와 맞닿아 보인다. 기후부는 산업통상자원부에서 에너지 정책 상당 부분을 흡수한 후 재생에너지 확대 드라이브를 걸었다. 태양광 확대를 기저에 깔고 풍력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최근 2030년까지 육상풍력 6기가와트(GW) 보급, 해상풍력 4GW 보급 목표를 공개했다. 특히 국유림이 훼손되더라도 육상풍력을 깔겠다는 방법론을 공식화한 점이 눈에 띈다. 여기에는 김 장관의 의지가 반영됐다는 후문이 들린다. 지구를 지켜야 하는데 지금 소소한 환경 파괴까지 따질 시간이 없다는 것처럼 읽힌다.

현실 속 외계인의 존재로는 화석 연료를 겨냥한 것 같다. 김 장관은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탈석탄을 공언했다. 이 인식에는 공감한다. 다만 김 장관이 생각하는 배제해야 할 적의 범주는 영화 속 미셸보다 넓어 보인다. 석유화학산업에서 나오는 부생수소, 그리고 원자력발전도 적으로 간주하는 듯하다. 둘 다 석탄과 달리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에너지원이 아니다. 그럼에도 재생에너지를 확대하기만 하면 필요 없는 에너지원처럼 인식하는 경향이 드러난다.

실제 수소 정책은 안 보이고 원전 정책도 제동이 걸렸다.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정의한 신규 원전 2기 건설은 아직 부지 공고조차 나지 않았다. 김 장관은 한국수력원자력이 부지 공고를 하면 될 일이라며 자신의 일이 아닌 것과 같은 입장을 보여 왔다. 하지만 산하기관에 불과한 한수원이 김 장관 용인 없이 부지를 어떻게 선정할 수 있겠나. 정부조직개편 이후 착수한 12차 전력수급계획에서 원전을 배제하려는 거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지구를 지키려는 김 장관의 숭고한 뜻을 폄훼할 생각은 없다. 대신 재생에너지만을 강조하는 뜻에 동의할 생각도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테디가 미셸 한 명을 고문했다고 해서 지구를 지킬 수는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미셸은 안드로메다 성인이었던 사실이 영화 말미에 밝혀진다. 그래서 뭔 일이 발생했는가. 인류를 관찰하던 미셸과 그 동료들은 인류라는 실험이 실패했다고 보고 지구에 쳐져 있는 보호막을 제거했다. 이후 인류는 소멸한다.

김 장관의 재생에너지 신념은 옳을 수 있지만 결과도 좋으리라고 보기엔 불확실성이 크다. 원전 등 기저전원이 없는 한반도에서 재생에너지만 확대되면 전력 공급 불확실성부터 커진다. 2011년 9월 발생한 대정전 사태가 다시 오고 수시로 반복될 수도 있다. 전기 공급이 안 되는 시대. 문명의 이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이는 인류 멸망만큼의 피해가 된다.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부산 이전을 진두지휘하는 과정에서 통일교 금품수수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하선했다. 부산으로 항해하는 해수부는 졸지에 항로를 정했던 선장을 잃고 우왕좌왕하는 중이다. 김 장관이 진두지휘하는 기후부 재생에너지 정책은 과연 이런 일이 없을 것인지를 묻고 싶다. 김 장관은 언젠가 떠나겠지만 재직 당시 만든 정책은 후대에 영향을 미친다. 신념을 관철한 뒤 사망해 인류 멸망만 부른 테디의 전철을 밟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신준섭 경제부 차장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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