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e calm and strong(침착하고 강해져라).” 미국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말이다. 홀로 바다에 나선 노인이 자신의 배보다도 큰 길이 5.5m 청새치를 잡으려 사투를 벌이며 스스로에게 던진 말이다. 작가의 문장은 표현은 간결하지만 숨은 의미는 훨씬 더 큰 ‘빙산 이론’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짧은 문장에도 인내, 고독, 용기, 삶과 죽음의 경계에 선 인간 존엄 등이 함축돼 있다.
이 문장이 새삼 주목받은 건 2020년 12월이다. 문재인정부 시절, 법무부 검사징계위원회를 하루 앞둔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은 자신의 카카오톡 프로필 메시지에 이 문장을 올렸다. 이후에도 오랫동안 이를 유지했고, 지지자들 사이에서 이 문장은 윤석열의 슬로건으로 여겨졌다. 그가 정치를 할지 말지에 관심이 쏠렸던 시점이었다. 그가 잡으려는 청새치는 대권이었다.
최근 이 문장이 다시 소환됐다. 김계리 변호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윤 전 대통령과 식사한 사진을 게시하며 “내 손으로 뽑은 나의 첫 대통령, 윤버지(윤석열 아버지). Be calm and strong”이라고 적었기 때문이다. 윤 전 대통령이 이 메시지를 올려달라고 요청했다고 한다. 김 변호사 등은 최근 ‘윤 어게인 신당’ 창당 기자회견을 예고했다가 취소하면서 윤 전 대통령의 의중은 “청년들의 순수한 윤 어게인 운동에는 아버지처럼 함께하겠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신당 창당 때까지 침착하게 기다리라는 말을 지지자들에게 전한 걸까. 정치 입문 때의 메시지를 다시 들고나온 것인데 지금 그가 잡으려는 청새치는 무엇일까.
윤 전 대통령은 헌법재판관 만장일치로 파면됐으며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재판 중이다. 유죄가 확정되면 사형 또는 무기징역에 이를 수 있다. 이런 인물이 반성과 사과, 자숙 없이 ‘사저 정치’를 해서는 안 된다.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다. 거대한 자연 앞에 지친 몸과 흔들리는 정신을 다잡기 위해 했던 말을 이런 상황에서 쓸 건 아닐 것이다.
한승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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