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보건기구(WHO)가 올해 국제담배규제기본협약(FCTC) 발효 20주년을 맞아 최근 한국 등 183개 비준국에 특별 메시지를 냈다. 제목은 ‘사선에 놓인 담배규제(Tobacco Control in the firing line)’다. 제목만 봐도 전 세계 담배규제 정책이 위기에 처해 있다는 느낌이 든다. 궐련은 물론 액상 전자담배 등에 대한 국제사회의 규제 움직임이 강화되자 담배업계 및 관련 집단의 개입·방해 행위가 점점 거세지고 있는 만큼 당사국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국제 공조를 촉구한 것이다.
담배업계 등의 담배규제 입법 및 금연 정책 저해 활동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외에선 2010년 글로벌 담배 회사가 우루과이 정부를 상대로, 국내에선 2022년 흡연자단체가 금연 정책 실행 정부기관을 상대로 각각 담뱃갑 건강경고 크기, 전자담배 경고그림 및 금연광고 관련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으나 모두 기각됐다.
만일 소송에서 담배업계 등이 승소했다면 어땠을까. 정부의 관련 정책이 크게 위축될 게 뻔하다. 하지만 이들 재판에서 공통적으로 중시된 것은 공공의 이익과 공중보건 정책의 보호였다. 보건 분야 세계 최초 국제 협약인 FCTC는 5조 3항에서 담배업계의 상업적 및 기타 기득권으로부터 담배규제에 관한 공중보건 정책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이행을 촉구하고 있다.
근래 담배업계의 방해 공세는 더 노골화하고 있어 우려스럽다. 담배규제 옹호자나 연구자에 대한 감시와 위협, 정부 정책 담당자 개인을 상대로 한 법적 조치 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이달 초 WHO 서태평양지역 FCTC 당사국들이 개최한 ‘웨비나’(웹 사이트에서 진행되는 세미나)에서 논의된 담배규제 옹호자·연구자에 대한 ‘공격’ 중 가장 많은 것이 연구에 대한 대중의 불신을 유도하는 것이었다. 다른 과학자나 의사를 활용해 상충되는 증거를 제시하고 “신뢰할 수 없다”거나 “공적자금이 공중보건 강화를 위해 낭비됐다”는 식이다. 법적 조치나 정보공개 요청, 감시, 개인 및 조직을 통한 항의 등도 자주 이용되는 방식이다. 한 담배규제 전문가는 “미국 담배회사 내부 문건에는 규제 연구자들 ‘블랙리스트’가 있는데 내가 포함돼 있는 걸 알고 놀랐다”고 했다. 이런 전략으로 담배규제 정책의 통과와 시행에 후퇴를 불러오고 개인적으로는 모욕감과 탈력감, 좌절을 느끼게 해 연구 활동 축소를 노리는 것이다.
얼마 전 우리 국회에선 합성 니코틴 액상 전자담배를 ‘담배 정의’에 포함해 규제하는 담배사업법 개정안 통과가 좌절됐다. 일부 전자담배 판매단체의 반발 때문이었다. 규제의 근거가 된 정부의 ‘합성 니코틴 유해성 연구’를 문제 삼았다. 연구 결과 합성 니코틴도 천연 니코틴만큼 유해한 걸로 나왔는데, 합성 니코틴의 안전성을 주장해 온 해당 단체는 연구과제 수의계약, 연구에 쓰인 시료의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며 감사원 감사 제보, 예산낭비 신고 등과 함께 보건복지부 담당 책임자를 형사 고발했다. 하지만 국가계약법상 적법한 절차에 따라 계약 체결과 관리·감독이 이뤄졌고 연구가 적절히 수행됐다는 외부 전문가의 평가 또한 완료해 문제없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더욱이 공무원 개인을 상대로 한 법적 조치로 압박을 가하는 것은 도를 넘은 것 아닌가 생각된다. 개인을 괴롭혀 규제 정책을 지연하려는 목적,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합성 니코틴의 중독성과 청소년 뇌 발달에 대한 영향 등 유해성은 미국 식품의약국(FDA)도 경고하고 있으며 전 세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는 추세다. 담배업계의 입법 개입과 저해 활동으로 인해 규제가 늦어질수록 아동·청소년 등 국민 다수의 건강이 위험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 우리 모두 FCTC 5조 3항을 다시 한번 상기하자. 정부는 담배업계의 정책 개입을 극복하고 담배규제를 흔들림 없이 추진하길 바란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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