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1974년 7월 27일 리처드 닉슨 대통령 탄핵안을 의결했다. 사유는 셋인데, 첫번째가 사법방해(obstruction of justice)였다. 워터게이트 빌딩에 있는 민주당 사무실을 도청해 전략을 염탐한 것보다 대통령의 권한을 이용해 연방수사국(FBI)의 수사를 방해한 것을 더 큰 잘못으로 봤다. 1998년 12월 19일 하원에서 빌 클린턴 대통령의 탄핵안이 통과될 때 사유도 사법방해와 위증이었다. 백악관 인턴과의 성관계는 법으로 다스릴 일이 아니지만 법정에서 거짓말을 하고, 사법절차의 정당한 진행을 막은 것 만큼은 묵과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미국에서는 사법방해를 중범죄로 처벌한다. 수사, 기소, 재판을 방해하면 누구에게나 사법방해죄가 적용된다. 그러나 실제는 정치인과 공무원이 타깃이다. 연방형법 중 사법방해죄를 기술한 73조는 대통령과 주지사, 연방·주의 의원과 장관, 판·검사 등을 고발할 때 가장 많이 인용되는 조항이다. 지위가 높고 권한이 많을수록 증거를 인멸하거나 증인에게 압력을 행사해 허위 증언을 강요할 가능성이 높다는 취지다.
처벌도 무시무시하다. 워싱턴DC에서는 법정최고형이 징역 30년이다. 2007년 사법방해 혐의로 기소된 딕 체니 전 부통령의 비서실장 루이스 리비는 징역 30개월, 벌금 25만 달러를 선고받았다. 뉴욕주 상원 법사위원장을 역임한 존 샘슨 의원은 FBI의 횡령 사건 수사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돼 2017년 징역 5년, 벌금 7만5000 달러를 선고받고 의원직도 잃었다.
우리는 사법방해 대신 공무집행방해, 위증, 증거 인멸·은닉 등을 처벌한다. 그러나 모함을 위한 위증이 아니라면 법정최고형은 징역 5년에 불과하다. 게다가 지위와 권한을 악용해 법망을 피하는 정치인과 공무원을 제어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엇그제 감사원이 비리 증거를 없애고 서류를 조작한 선거관리위원회 직원들을 검찰에 수사의뢰했다. 그런 일이 과연 선관위에만 있을까. 무너진 기강을 바로잡을 강력한 대책이 절실하다.
고승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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