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근대란 무엇인가… 세계사적 질문에 답하다

[책과 길] 근대중국사상의 흥기 <上> 1·2
왕후이 지음, 백원담 외 옮김
돌베개, 953·615쪽, 6만·4만5000원

왕후이 칭화대 중문과 교수가 지난 2018년 6월 계간지 ‘황해문화’ 100호 기념으로 인하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해 주제발표를 하고 있다. 백원담 성공회대 교수 제공

중국의 신좌파 이론가인 왕후이(汪暉·64) 칭화대 중문과 교수의 역작 ‘근대중국사상의 흥기’가 번역돼 나왔다. 2004년 초판이 나온 이후 중국에 대한 세계의 이해에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상권 1·2부, 하권 1·2부로 전 4권 구성인데, 상권 두 권이 먼저 출판됐다. 하권 두 권은 7월 출간 예정이다. 네 권을 합하면 총 2600여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이 책이 외국어로 완역되는 건 한국이 처음이다. 책에는 상권의 배경 설명에 해당하는 ‘도론’과 하권을 종합해 놓은 ‘총론’이 실려 있다. 미국 하버드대 출판사는 2014년 도론을 번역해 ‘중국, 제국으로부터 민족국가로’라는 제목으로 출판했고, 지난해 상권을 종합한 영어 번역본을 냈다. 일본 이와나미서점은 도론과 총론을 모아 ‘근대중국사상의 형성’이라는 제목으로 출간했다.

이 책의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유학을 중심으로 한 중국 사상사를 매우 깊게 다루기 때문이다. 왕후이는 송나라부터 명-청을 거쳐 중화민국 초기에 이르는 1000년간의 중국 역사와 사상사의 변화를 ‘중국이 어떻게 근대의 경로를 밟아나갔는가?’라는 관점에서 분석한다.

한국어판 번역에는 백원담 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를 중심으로 한 10명의 중국 연구자가 참여했다. 백원담, 윤영도(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교수), 이영섭(건국대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조교수), 차태근(인하대 중문과 교수)은 감수를 맡아 초벌 번역된 원고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교열하면서 용어의 통일과 역주 작업에 오랜 시간을 들였다.

백원담·이영섭 교수는 ‘역자 후기’에서 ‘중국은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세계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중국은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고, 오늘의 중국을 추동하는 힘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며 “그 세계사적 질문에 대한 가장 명쾌한 중국식 해명”이라고 책을 설명했다.

왕후이는 루쉰 연구자로 1996∼2007년 잡지 ‘두수(讀書)’의 주편을 맡으며 신좌파의 대표 격으로 중국 사상계를 주도해 왔다. 신좌파는 1990년대 등장한, 중국의 친자본 노선을 비판하는 일군의 지식인들을 말한다.

‘근대중국사상의 흥기’는 왕후이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왕후이는 이 책에서 ‘무엇이 근대고, 무엇이 중국의 근대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고자 한다. 그는 먼저 중국의 근대를 설명해온 기존의 두 가지 서사를 비판한다. 하나는 서구의 서사로 “전통 중국(특히 청대 사회)은 근대 자본주의 발전을 촉진할 만한 능력이 없었고, 따라서 근대 중국은 유럽 자본주의, 제국주의, 식민주의 혹은 근대의 충격과 이에 대한 중국 사회의 대응 과정에서 태동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중국 혹은 아시아의 독자적인 근대성 서사다. 일본의 나이토 고난은 1920년에 ‘당송 변혁기론’을 제출했고, 그 후 교토학파의 학자들은 ‘동양의 근세’, ‘송대자본주의’라는 논제를 발전시켰다.

왕후이는 시장경제, 민족국가, 도시와 산업 문명, 시민사회, 세속화 등을 근대를 구성하는 기본 요소로 보는 서구의 개념과 범주가 중국 상황을 해석할 때 유효하지 않다면서 이같은 중국 근대 서사를 비판한다. 이어 중국과 근대라는 범주를 새롭게 규정하면서 유학이라는 키워드로 ‘중국의 근대’를 분석한다.

왕후이는 중국이 다른 민족과 문화, 지역 등을 자신의 요소로 내재화하는 지속적인 ‘중국화’를 통해 이례적인 연속성을 유지해 왔다며 ‘트랜스 시스템 사회’라고 규정한다. 그러면서 이 트랜스 시스템의 작동 원리가 유학이라고 본다. 유학은 단순한 사상이 아니라 중국 사회를 구축하는 정치 문화다. 왕후이는 이 책에서 유학이 시대적 조건에 대응해 전환을 거듭하면서 자아 관념, 사유권 사상, 실증적 방법론, 주권의식, 지역 개념 등 근대적 정체성에 도달하는 경로를 그려낸다.

유학의 사상적 전환을 보여주는 몇 가지 장면을 보자. 송대 이학(성리학)의 형성은 ‘초기 근대’라고 할 수 있는 변화가 시작됐음을 암시한다. 이학의 천리적 세계관은 “새로운 도덕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상적 자원을 제공”했으며, “일종의 준민족주의의 자원으로 전화할 수 있었다.”

천(天)과 리(理)로 우주 질서와 도덕 근원을 통섭하는 천리 세계관은 청대에 실증적 공리 세계관으로 전환되는데 “근대 중국 혁명의 주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가 전통 중국을 민족국가로 전환시키는 것이었다고 한다면, 천리 세계관의 해체와 공리 세계관의 지배적 지위의 형성은 바로 이러한 전환에 적응하는 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청말 사상계를 이끌었던 유학자 캉유웨이의 저서들에선 ‘대동’의 유토피아적 비전, ‘삼통설’이라는 진화론적 세계관, 변법으로 대변되는 제도 개혁의 근거, 그리고 주권국가로서의 자기 전변에 대한 주장 등을 읽어낼 수 있다.

이 책이 다루는 중국 유학의 변화사를 일반 독자들이 읽어내긴 쉽지 않다. 하지만 한국 사상과 깊은 관련이 있는 중국 사상사에 접근할 수 있는 흥미로운 통로로, 세계와 다른 길을 가면서도 놀라운 생명력을 보여주는 중국에 대한 가장 중국적인 분석으로 의미가 있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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