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0년간의 기후위기 대응은 왜 실패했는가? ‘기후를 위한 경제학’은 이 질문으로 시작한다. 기후위기 대응을 집요하게 방해하고 지연시키려는 화석연료 기득권, 탄소세 등 시장의 가격 메커니즘에 의존해온 정책 수단들, 대규모 이산화탄소 제거 기술 등 기술적 해결책에 대한 희망, 시민들의 변하지 않는 탄소집약적 라이프스타일 등을 이유로 꼽을 수 있다.
저자 김병권은 이를 “기후위기 대응과 경제 문제의 충돌”이라고 간명하게 정리한다. 기후위기 대응은 성장주의 경제와 필연적으로 충돌한다. 그리고 “경제성장 패러다임을 흔드는 것은 당연하게도 현대 사회 전체를 뒤흔드는 위협으로 느껴지게 된다.”
그는 성장주의를 내재한 주류경제학을 뛰어넘지 않고는 기후위기 대응이 불가능하다며 기후를 위한 새로운 경제학을 모색한다. ‘생태경제학’이 그것이다. 책은 생태경제학 입문서를 자처하면서 이 낯선 경제학이 어떻게 형성됐으며, 기존 경제학과 어떻게 다른지, 주요한 이론과 정책들은 무엇인지 소개한다.
생태경제학은 성장의 한계에 주목하는 비주류 경제학이다. 지구가 감당할 수 있는 경제 규모가 정해져 있다고 본다. 그것은 지구라는 생태계가 가진 생물리학적 한계다. 주류경제학은 그 한계가 없는 것처럼 계속 성장이 가능하다고 말해왔다.
하지만 지금보다 8배 불어난 경제 규모를 지구가 정말로 감당할 수 있을까. OECD는 세계성장률이 연평균 2.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는데, 그러면 2100년에 세계 경제 규모는 현재의 8배 가깝게 불어나게 된다.
생태경제학은 경제 성장의 비용에도 주목한다. 성장이 계속되다 보면 어느 순간 성장의 이익보다 생태적 손실 비용이 훨씬 더 커지는 ‘비경제적 성장’ 국면에 들어간다고 보고 손실 비용이 이익을 넘어가기 전에 성장을 멈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요 선진국들은 1980년대부터 이미 성장의 비용이 이익을 초과하고 있다.
생태경제학이 생각하는 새로운 경제 모델은 ‘정상상태 경제’나 ‘도넛 경제’로 제시됐다. 가장 중요한 생태경제학자 중 한 명인 허먼 데일리가 제안한 정상상태 경제는 “자연에서 얻은 물질과 에너지, 그리고 자연으로 버리는 폐기물을 자연이 재생하고 흡수할 수준으로 최소화하는 경제”를 말한다. 옥스팜 경제학자 케이트 레이워스가 고안한 도넛 경제는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등 많은 도시와 지역들에서 주목하고 있다. 시민들로 하여금 아래로는 ‘복지를 위한 사회적 기초’ 밑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고, 위로는 ‘생태적 한계’를 넘지 않게 하여, 그 사이에서 ‘사람들의 삶을 위한 안전하고 정의로운 영역’을 구축하자는 것이다.
이를 위해 가장 중요한 과제는 국가 차원에서 우리 경제가 사용하거나 배출할 수 있는 연간 에너지, 물질 총량을 제한하는 것이다. 또 경제성장 대신 생태적으로 안전하고 사회적으로 정의로운 웰빙경제를 핵심 국가 목표로 재설정해야 한다. 근로소득보다는 물질자원이나 에너지에 무거운 과세를 함으로써 생태자원의 남용을 줄여나가도록 조세체계를 전환하는 것도 필수적이다. 주 4일제 같은 노동시간 줄이기를 유력한 기후위기 대책이자 무한한 경제 팽창을 막을 대안으로 보는 것도 특징적이다.
그런데 성장을 외면한 경제, 경제성장을 우선순위에서 빼버린 국가나 사회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경제성장을 통해 해결해온 불평등이나 일자리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 인간은 물질에 대한 요구를 스스로 조정할 수 있을까. 김병권은 생태경제학이 답해야 할 수많은 질문들을 거론하고 이를 다룬 연구 결과를 촘촘하게 인용하면서 답변한다. 핵심은 ‘좋은 삶(웰빙)’을 키워드로 한 새로운 삶의 방식을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예컨대, 탈성장론자인 독일의 경제사학자 마티아스 슈멜쩌는 ‘사적 충분성’과 ‘공적 풍요로움’을 새로운 삶의 방식으로 제안한다. 개인적으로는 기본적 필요를 채우면 충분하고, 나머지는 잘 구비된 공유자원을 통해 풍요로운 삶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김병권은 사회적경제와 디지털경제, 기후경제 등을 연구해왔다.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부원장을 지냈고, 박원순 시장 당시 서울시에서 혁신센터장과 협치자문관을 맡았다. 이어 지난해까지 정의당 부설 정의정책연구소 소장으로 일하며 심상정 후보의 대선정책을 만드는 데 참여했다.
그는 화석연료를 버리고, 성장을 포기하는 게 ‘정치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고 인정한다. 그러나 화석연료를 계속 더 태우고 물질적 팽창을 무한히 확대하는 것 역시 유한한 지구에서 ‘물리적으로’ 명백히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연은 우리와 타협하지 않으므로 결국 정치적으로 해결하는 것 외에 달리 선택은 없다”고 주장한다.
김남중 선임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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