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 만루에서 믿었던 4번 타자가 헛스윙 삼진을 당하면서 이닝 말 공격이 무위로 끝났다. 자신의 구위만 믿고 윽박지르던 선발투수는 결국 역전을 당한 채 5이닝 만에 강판당했다. 쏟아지는 팬들의 야유 속에서 새로운 중간계투가 마운드에 올랐다. 별다른 프로 경력이 없는 신인 투수. 팬들은 이 투수가 겁먹지 않고 자신의 공을 던지길 기대하고 있다. 최악의 상황은 부족한 경기 경험 탓에 볼넷을 남발하다 큰 것 한방에 자멸해버리는 것이다. 이 투수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대한민국을 야구에 비유한다면 이런 상황일 것이다. 지난 대선 이재명 후보의 패배로 문재인 대통령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그리고 등판한 게 윤석열 대통령이다. 현재 윤석열정부를 바라보는 국민의 심정은 신인 투수를 바라보는 심정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의 강판 이유는 극에 달한 자산 양극화와 민생 불안이었다. 하고 싶은 걸 다 해보라고 전폭적인 지원을 해줬지만 핵심 정책 대부분 능력 부족을 드러내며 미완의 조치로 끝나거나 실패했다. 여기에 정부와 여당의 잇단 내로남불과 편 가르기 행태에 분노한 국민은 신인 윤석열을 마운드 위로 불러냈다.
윤석열정부에 대한 기대감이 크진 않다. 윤 대통령은 정치 신인이고, 국민의힘은 환골탈태했다는 믿음을 주지 못했다. 문 전 대통령이 개인 지지율로 국정을 이끌었던 것처럼 윤 대통령도 순전히 반문 정서와 개인기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었다. 그를 뽑은 국민 대부분은 아마 ‘사고만 치지 말라’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이런 중간계투 윤 대통령이 벌써 불안하다. 관가에선 “정권 최대 업적이 취임 첫날 나왔다”는 말이 돈다. 취임일 자정을 기해 청와대를 공개했던 걸 일컫는 말로, 이게 최고 업적으로 꼽힐 정도로 실망스럽다는 뜻이다. 윤 대통령 지지율은 두 달도 안 돼 데드크로스에 돌입했다. 애초에 기대가 크지 않았던 사람들은 더 참지 못하고 등을 돌리고 있다.
장관급만 벌써 4명이 낙마한 인사 문제는 전임 정부와 별반 다를 게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탕평 인사나 국민 화합형 인사와도 거리가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국회 인사청문회 헛발질로 여론이 다소 반전되긴 했으나 한동훈 법무부 장관 임명은 자기편만 챙긴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검찰총장이 공석인데도 한 장관은 대규모 검찰 인사를 단행하며 누가 정권의 핵심인지를 거침없이 보여주고 있다. 윤 대통령의 오른팔로 불리는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역사적 배경은 외면한 채 느닷없이 경찰 인사권 확보에 나섰다. 이렇게 큰 문제를 충분한 의견 수렴 없이 단편적 사실관계만 부각해 밀어붙이니 국민적 반감이 생긴다. 두 부처는 모두 수사기관을 외청으로 둔 곳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이 두 달도 안 돼 검경부터 틀어쥔다? 세간의 인식이 좋을 리가 없다.
윤 대통령의 도어스테핑은 혁신적인 소통 방식이다. 대통령이 구중궁궐에서 내려와 미·일 지도자처럼 국민과 소통하는 건 분명 환영할 만한 일이다. 그러나 좋은 형식에 나쁜 메시지가 내려앉으니 형식마저 폄훼당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인사 난맥상을 묻는 말에 “전 정권에 지명된 장관 중 이렇게 훌륭한 사람을 봤는가”라고 답했다. 무언가 정부에 나쁜 질문을 할 때 전임 정부와만 비교하는 답변이 많다. 듣는 사람으로선 “대통령이 공부가 안돼 있다”는 판단을 할 수밖에 없다.
국정은 144경기를 하는 페넌트레이스가 아닌 단판 한국시리즈다. 윤 대통령에게 주어진 기회는 한 번뿐이며, 지금처럼 볼넷을 쌓아간다면 자칫 패전투수로 전락할 수 있다. 불펜에선 벌써 너도나도 몸을 풀고 있다는 말이 나와서야 되겠는가.
강준구 사회2부 차장 eye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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