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를 열었을 때 바다 냄새가 확 풍겼다. 신선하고 짭조름한 갯바람 냄새. 여수 향일암의 일출을 감상한 뒤 아침 식사를 하면서 맛본 갓김치라고 지인이 말했다. 입맛을 당기는 남해의 알싸한 맛을 전한다는 말을 덧붙이며. 확실히 식욕을 돋우는 이런 향미가 우리에게 있다니. 보내준 분의 정성이 고맙고 먹거리를 길러낸 우리 땅, 우리 바다에 감사하고 싶은 마음이다. 갓김치의 곰삭은 향미와 잘 익은 빛깔에 이끌려 이른 저녁 밥상을 차렸다. 밥은 잡곡을 섞은 쌀밥이어야 한다. 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음식이 김치가 아닌가. 이제는 우리 김치가 세계인 입맛을 사로잡은 지 오래다. 김치와 불고기 때문에 한국 레스토랑을 찾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우리 문화의 우수성을 또 한 번 입증한 일이 아니겠는가.
김치 중에서도 갓김치는 확실히 맛이 독특하다. 맵고 짜며 너무 칼칼해서 싫다는 사람도 있는 게 사실이다. 양념이 조금 센 편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갓김치도 남쪽 사람들의 입맛에만 머물지 않았다. 덜 맵고 다소 싱겁게 간을 하고 젓갈도 약하게 해 맛이 순화됐다고나 할까.
갓김치가 세상에 널리 알려진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 갓이라는 채소의 변화다. 원래 남부지방에서 자라는 갓은 맵고 쓰다. 날로 먹을 때는 쌉싸름한 맛 때문에 다른 채소에 비해 식재료로 널리 쓰이지 못했다. 손맛 좋은 우리의 남도 어머니들은 맵고 쓴 채소에 젓갈 양념으로 기막힌 요리를 창조해 냈다. 게다가 쓴맛을 뺀 돌산갓이라는 신품종을 개량해 냈다. 잎이 더 넓고 수확량이 많으며 단맛이 나기 때문에 대중을 사로잡은 듯하다. 그러나 미식가들은 아직도 재래종 갓을 잊지 못한다. 잎이 무처럼 잘게 찢어지고 거친 털이 있으며 쓴맛 매운맛이 강한 재래종 갓. 충남 이남의 길가나 밭둑에서는 겨울에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 다른 나라에서는 씨를 향신료로 사용할 뿐 엽채로 사용하지 않는 것을 우리는 갓김치라는 맛으로 숙성시켰다. 놀라운 우리의 맛.
오병훈 수필가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