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공직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 외에 비쟁점 법안까지 모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면서 민생과 직결된 비쟁점 안건 190여건의 정기국회 내 처리가 불투명해졌다. 비난 여론이 높아지자 여야는 1일 상대방을 향해 서로 “민생을 볼모로 삼고 있다”며 책임을 전가하고 대대적인 여론전을 펼쳤다. 특히 ‘민식이법’ 처리 불발의 책임을 놓고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이 법은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희생된 김민식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 마련한 도로교통법 개정안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는 오전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민식이법이 왜 필리버스터 대상이 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한국당이 민식이법을 먼저 처리하자고 했다는데 명백한 거짓말”이라고 한국당을 몰아세웠다. 이어 “199개 안건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먼저 신청해놓고 여론의 비판에 몰리니 궁여지책으로 내민 게 ‘민식이법은 우선 처리하겠다. 그러나 나머지 몇 개 법안의 필리버스터는 보장하라’는 것 아니었느냐”고 지적했다.
3시간쯤 지나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도 기자간담회를 열고 반박에 나섰다. 나 원내대표는 “국회 본회의에서 민식이법을 통과시키지 못하게 한 것은 여당”이라며 “민식이법과 민생 법안은 안중에도 없는 여당”이라고 주장했다. 나 원내대표는 “민식이법은 필리버스터 대상이 아니었다”며 “그날 본회의를 열었다면 민식이법은 통과됐을 것”이라고 했다.
누구 말이 맞는 걸까. 민식이법은 지난 29일 본회의 직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수정안이 통과됐다. 한국당이 이에 앞서 본회의 상정이 예정됐던 국가인권위원회 위원 선출안 및 198개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기 때문에 민식이법이 필리버스터 대상에서 빠진 건 맞는다. 하지만 한국당이 무더기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지 않고 예정대로 본회의가 열렸다면 여야 합의가 이뤄진 민식이법 수정안은 이날 본회의에서 통과됐을 가능성이 높았다. 필리버스터 대상으로 지정하지 않았기에 민식이법은 처리할 수 있었다는 한국당 주장이 큰 호응을 얻지 못하는 이유다.
본회의에 오르기 직전 발이 묶인 198개 법안 중 위원회 대안 76건은 한국당의 동의하에 상임위와 법사위를 통과한 것이다. 또 한국당 의원이 단독 발의한 법도 26개나 포함돼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항 지역의 지진 진상조사 및 피해 보상 등을 위한 ‘포항지진특별법’으로, 포항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한국당 김정재 의원이 발의한 것을 위원회가 대안으로 마련한 것이다.
또 이미 지난해 여야가 합의해놓고 번번이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청년기본법도 통과에 빨간불이 켜졌다. 이 법은 법적으로 19~34세를 청년으로 명시하고, 국무총리가 청년 정책 기본계획과 연도별 시행 계획을 수립해 정부가 청년의 삶을 지원하는 실질적인 정책을 수립토록 하는 법이다. 일본의 수출규제를 계기로 국내 소재부품 장비 산업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마련된 ‘소재부품장비특별법’ 등 경제 관련 법안들도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김나래 김용현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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