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증시에서 ‘엑소더스(자금 탈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수출 심사 우대국) 배제 조치에 ‘바이오 거품’ 우려가 겹치면서 하락세가 멈추지 않는다. 미·중 무역분쟁마저 전면전으로 확산될 조짐을 보이면서 마땅한 반등 동력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국내 주식 대신 미국 등 해외 주식으로 눈을 돌리는 투자자들은 점점 늘고 있다.
한국 주식시장은 대내외 악재 속에 ‘최약체 시장’으로 전락하고 있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는 이런 흐름에 기름을 부었다. 4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 규제를 공식화한 지난달 511개 종목이 52주 신저가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도 지난 2일까지 464개 종목이 새롭게 52주 신저가로 떨어졌다. 전체 증시 상장종목 2252개(코스피 900개, 코스닥 1352개) 가운데 43.3%인 975개 종목이 최근 한 달 새 ‘신저가 기록’을 경신한 것이다.
코스피지수는 지난 2일 ‘심리적 지지선’으로 여겨졌던 2000선마저 내줬다. 약 7개월 만에 1998.13까지 추락했다. 코스닥도 바이오기업 신라젠이 ‘미국 임상실험’ 중단으로 하한가를 맞은 여파로 615선까지 주저앉았다. 원·달러 환율은 9.5원 오른 1198.0원까지 상승해 ‘1200원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증시 하락의 대내 요인은 기업 실적 악화다. 기업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시가총액 100대 기업 가운데 올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55곳을 조사한 결과 전년 동기 대비 영업이익이 39.8%나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반도체 연합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각각 17조6808억원(57.9%), 7조9371억원(79.8%) 줄어든 게 뼈아팠다. 석유화학 분야 대기업의 실적도 쪼그라들었다. LG화학 영업이익은 지난해 대비 8113억원(59.9%) 줄었고,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도 각각 7346억원(47%), 4773억원(72.6%) 감소했다.
대외 여건도 악화일로다. 미·중 무역분쟁은 더 나빠지고 있다. 지난 1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는 9월부터 3000억 달러 상당의 중국 제품에 10%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는 “미국이 추가 관세를 실행에 옮기면 필요한 반격 조치를 할 것”이라고 맞대응했다.
온통 잿빛인 국내 증시에 반등 계기는 없을까. 금융시장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조 속에서 글로벌 유동성 확대가 가져올 ‘선물’에 주목한다. 중국이 하반기부터 통화 확대 및 소비 부양 등 본격적인 경기 부양을 강화하면 4분기 이후 국내 수출도 빠르게 회복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고개를 든다.
핵심은 반도체 시장의 ‘조기 회복’이다. 시장에선 반도체 업황이 3분기에 저점을 통과하고 내년부터 상승 전환할 수 있다는 장밋빛 관측도 나온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반도체 재고 조정 및 가격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예측도 제기된다. 이를 반영하듯 외국인투자자들은 지난달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주식을 2조원가량 사들였다. 삼성전자 지분의 외국인 보유 비중은 지난달 기준 58.01%까지 오르며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다만 미·중 무역협상 결렬로 글로벌 교역이 위축되면 세계 증시 변동성이 커지고 달러 강세가 지속되는 상황이 펼쳐진다는 불안감도 높다. 하인환 메리츠종금증권 연구원은 “일본 이슈에 더해 미·중 무역분쟁 격화로 단기적인 주가 충격이 더욱 커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수집,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