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각 물질을 흡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수사기관이 형사소송법이 정한 절차를 어기고 수집한 증거는 적법한 증거로 볼 수 없다는 취지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11단독 심현근 판사는 화학물질관리법상 환각물질흡입 혐의로 기소된 20대 A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경찰은 지난 5월 A씨 모친에게서 “아들과 통화를 해보니 대답을 잘 못하고, 가스를 흡입했는지 취해있는 것 같다”는 내용의 구조요청을 받았다. 경찰은 위치정보사업자에게 A씨 휴대전화 위치 정보를 받았고 그가 머물고 있던 서울 동작구 소재 호텔을 찾아냈다. “모친 신고로 안전여부를 확인해야 하니 문을 열어달라”는 경찰 요청에도 A씨는 “나는 무사하니 그냥 돌아가라”며 문 열기를 거부했다. 결국 경찰은 호텔 측으로부터 마스터키를 받아 강제로 문을 열었다. 객실 안에서는 가스 냄새가 났고, 뚜껑이 열린 부탄가스통 22개와 비닐이 발견됐다. A씨는 현행범 체포됐고 이후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수사기관이 제출한 부탄가스통과 지문감정결과, 현장 사진 등 주요 증거의 증거능력을 인정하지 않고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당초 경찰이 A씨 위치정보를 수집할 때 본인 동의를 얻지 않는 등 절차를 어겼기 때문에 해당 위치정보를 바탕으로 확보한 물증도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봤다.
위치정보법은 구조받을 사람 본인으로부터 구조를 요청받거나, 제3자의 구조요청이 있고 구조받을 사람의 구조 요청 의사가 확인된 경우에 한하여 피구조자의 개인위치정보를 제공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제3자의 구조 요청이 있어도 구조받을 사람의 의사가 확인되지 않으면 구조를 요청한 제3자의 개인위치정보만 받을 수 있다.
심 판사는 “위치정보법에 따라 구조받을 사람의 개인위치정보를 받으려면 본인의 구조 의사를 확인해야 한다”며 “경찰은 A씨 모친으로부터 구조요청은 받았지만 정작 A씨 본인의 의사는 확인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구조가 아닌 수사 목적의 위치정보 수집이었다고 해도 위법하기는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다. 심 판사는 “환각물질 흡입의 범죄 혐의를 두고 A씨 소재를 파악하고자 했다면 이는 수사에 해당하므로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했다”며 “이 사건에서 경찰은 관할 법원으로부터 그에 대한 허가를 받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형사절차상 체포나 구속 등 강제처분을 행하는 경우 원칙적으로 법관의 영장을 필요로 하는 영장주의에 어긋난다고 본 것이다. A씨가 사건 당시 생명을 위협받는 긴급한 상황에 놓여있지 않았기에 객실 수색 행위 자체가 위법하다고도 했다.
심 판사는 “수사기관의 위법한 압수수색을 억제하고 재발을 방지하는 가장 효과적이고 확실한 대응책은 (위법 절차로) 수집한 증거는 물론이고 이를 기초로 획득한 2차적 증거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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