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살 때 어머니로부터 아버지가 부산 근처에서 작전 수행 중 실종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국전쟁(6·25전쟁)에 유엔군으로 참전했던 참전용사 고(故) 가이 뷰캐넌 해럴 주니어의 딸 패티 해럴 거빈(76)씨가 2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을 방문해 전사자명비에서 탁본한 아버지 이름을 손에 든 채 말했다.



지난 23일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참전용사와 유가족 등 50명이 재방한 이번 행사에는 미국·캐나다·튀르키예·태국·뉴질랜드 등 5개국 참전용사 8명과 실종자 유족 등 42명이 초청됐다. 이날 참전용사와 유가족은 전사자명비에 헌화하고 전쟁기념관을 투어했다.




많은 유가족이 전사자명비에 새겨진 가족의 이름을 찾는 데 여념이 없었다. 이름을 발견한 유가족은 직접 혹은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탁본했다. 패티 씨도 아버지의 이름이 종이에 옮겨지는 모습을 지켜보며 “한국에 처음 왔는데 아버지의 이름을 보니 감정이 북받친다”며 눈물을 삼켰다. 또 “어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올해 3월에 돌아가셨는데 살아 계셨다면 이틀 전 104세가 됐을 것”이라며 “참 긍정적인 분이셨다”고 말했다.





헌화와 탁본을 마친 유가족은 전사자명비와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패티 씨도 “사진 속 적십자 건물 앞에 선 3명 중 한 명이 나의 아버지”라며 챙겨온 흑백 사진을 든 채 아버지의 이름과 가족사진을 남겼다. 탁본과 아버지의 이름을 조심스레 봉투에 넣은 뒤 다시 한번 눈물을 훔쳤다.




미국에서 온 참전용사는 전사자명비를 한참 동안 바라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태국에서 온 참전용사는 자신의 키보다 높은 곳에 있는 혹시 모를 동료의 이름을 오랫동안 찾았다. 한 유가족은 전쟁기념관 밖의 서울 도심을 멍하니 바라보다 사진으로 담았다. 많은 참석자가 쉽사리 발을 떼지 못한 채 전사자명비 앞에 머물러 있었다.



참전용사와 유가족은 지난 26일 입국했다. 27일 판문점 방문을 시작으로 국립서울현충원 참배,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 6·25전쟁 전사자 유해 발굴 설명회 등에 참석했다. 이날은 전쟁기념관 투어를 마친 뒤 국립중앙박물관·창덕궁 등을 방문한다. 30일엔 박민식 국가보훈처장 주관 감사 만찬에 참석하고 내달 1일 출국한다.

1975년 시작된 유엔 참전용사 재방한 사업은, 지금까지 22개국 3만3445명이 우리나라를 다녀갔다.
이한결 기자 alwayss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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