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평 계곡 살인’ 사건 피의자인 이은해(31)와 조현수(30)가 사실상 진술을 거부하거나 혐의를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6일 이씨 아버지를 통해 자수 의사를 전하며 경찰 체포해 순응한 이들이지만, 정작 경찰 조사에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애초에 왜 자수 의사를 내비쳤고, 지금은 왜 진술을 거부하는 걸까.
18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씨는 지난 16일 아버지에게 ‘자수할 테니 경찰관과 동행해 오피스텔 15층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경찰이 처음 15층에서 발견한 것은 조씨 1명 뿐이었고, 이후 이씨가 숨어 있던 층과 호수를 파악해 이씨까지 검거한 것으로 알려졌다.
2주 이상 도주를 이어가던 이들이 체포에 응한 것은 경찰이 수사망을 좁혀오는 상태에서 마지막으로 쓸 수 있는 카드가 자수해 형량을 줄이는 전략이었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형법 제52조 1항 자수 규정에 따르면 죄를 지은 후 수사기관에 자수한 경우 형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다고 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순히 숨어 있는 근거지를 알린 것만으로 자수가 인정되긴 힘들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날 YTN 라디오 ‘박지훈의 뉴스킹’에 출연한 구자룡 변호사는 “지금 상태로는 이들이 자수했다고 평가할 수 없고, 따라서 자수 감경 규정 적용을 받을 수도 없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자수란 범인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범죄사실을 수사기관에 신고해 그 소추를 구하는 의사표시인데, 이씨와 조씨가 은신처의 위치를 알리고 체포에 순응했을 뿐 경찰 조사에서 범죄 사실을 알리는 데는 비협조적인 상태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범죄사실을 부인하거나 죄의 뉘우침이 없는 자수는 감경사유가 되는 진정한 자수라고 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피의자가 경찰에 자진 출석했으나 범행을 부인한 경우 원심판결이 자수감경 규정을 적용했으나 대법원이 파기한 사례도 있다는 것이다.
구 변호사는 “이 사안도 이은해와 조현수가 진술을 거부하며 범행에 대해 자백과 뉘우침을 하지 않는다면 자수감경은 이뤄질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인천지검 형사2부(부장검사 김창수)는 지난 17일 오전 10시부터 이씨와 조씨를 인천구치소에서 불러 살인과 살인미수 등 혐의를 조사했는데 이들은 검사와 수사관 질문에 답변을 회피하는 등 진술거부권을 행사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거에 순응해놓고 진술은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구 변호사는 “이들이 먼저 이야기하지 않고 최대한 묵묵부답을 하면서 어디까지 수사가 진행됐는지 역으로 파악해 나갈 생각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여러 사건이 얽혀 있는 상황에서 한 혐의에 대해 진술을 하다가 엉키면 다른 혐의까지 드러나게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최대한 버티려 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구 변호사는 “아마도 최대한 버티다가 어쩔 수 없는 부분을 인정하는 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면서 “진술을 안 해도 어쩔 수 없이 물증에 의해 혐의가 입증될 부분만 인정하면서 그 부분만 자수감경을 노리고, 나머지는 상황에 따라 입장을 정할 생각을 하지 않을까 추론된다”고 내다봤다.
수사팀은 현재 이씨와 조씨 도피를 도운 조력자의 신원을 파악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이씨와 조씨는 공개수배가 내려진 이달 초 은신처를 벗어나 지인들과 경기 외곽으로 여행을 다녀왔는데 이씨가 다른 사람 명의의 신용카드를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팀은 이 신용카드 소유자와 당시 함께한 지인들이 이들의 도피를 도운 조력자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이들의 방조 혐의를 수사하고 있다.
한편 이씨의 아버지도 이씨와 조씨가 은신하고 있는 동안 대포폰과 텔레그램을 이용해 연락을 주고받았다. 아버지 역시 이들의 도피에 도움을 줬을 가능성이 있는 셈인데 아버지는 현재 수사 대상이 아니다. 형법 제151조에 따르면 친족 또는 가족이 은닉이나 도피를 도운 경우에는 처벌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 변호사는 “(아버지가 도피를 도왔을) 가능성이 있지만, 가족이라 처벌되지는 않는다”면서 “아버지처럼 ‘친족 특례’로 처벌을 면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닌데 도움을 주었다면 필연적으로 이은 해 일당의 살인죄부터 공범 관계일 가능성이 있어 이 부분까지 수사가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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