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20년 교통사고 전문 한문철 변호사는 쌍방과실 사고가 났을 때 상대방 보험사로부터 자기차량손해특약(자차특약)에 따른 자기부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 변호사는 보험사들이 돌려줘야 할 자기부담금이 연간 최소 2000억원이라고 추산했다. 실제 보험사로부터 자기부담금을 돌려 달라고 요구해 받아 낸 소비자의 사연도 공개돼 화제가 됐다.
소비자들은 보험사들을 상대로 ‘자기부담금을 돌려 달라’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최근 법원은 ‘도덕적 해이’를 막기 위한 자기부담금 제도의 성격을 고려할 때 보험사가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며 보험사 측 손을 들어줬다.
이는 자기부담금 소송에서 소비자가 패소한 첫 판결로 알려졌다. 자기부담금을 둘러싼 하급심 판결이 엇갈리고 있어 관련 분쟁은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10일 법조계에 따르면 수원지법 안산지원 민사1부(재판장 김형률)는 최근 강모씨 등 10명이 DB손해보험, 삼성화재, KB손해보험 등 6개 보험사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자기부담금을 돌려받을 수 있다는 주장의 골자는 다음과 같다. 쌍방 과실 사고가 나서 수리비로 100만원이 나왔다. 과실비율 산정에 다툼이 생기면 A보험사 가입자는 자차 보험으로 우선 수리를 할 수 있다. 이때 자기부담금이 20만원이면 가입자가 20만원, A보험사가 80만원을 부담한다.
최종적으로 과실비율이 본인 30%, 상대방 70%로 산정됐다고 가정하자. 이 경우 상대방 B보험사는 수리비 100만원 중 과실비율에 따른 70만원 중 자기부담금 20만원을 뺀 50만원만 A보험사에 지급한다. 이때 B보험사가 20만원은 가입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게 자기부담금 소송을 낸 원고들의 주장이다. 물론 단독으로 낸 사고를 자차보험으로 처리한 경우는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원고들은 자기부담금은 2015년 대법원 판례에 따라 상대방 보험사가 당연히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해당 판례는 손해보험이라는 틀은 같지만 화재보험 사례여서 자동차보험에도 적용될지 여부가 주목됐다.
보험사 측은 자기부담금은 본인이 부담하는 것으로 계약을 한 것이고, 자기부담금 제도가 사라지면 오히려 전체 보험료가 올라 사고를 내지 않은 가입자들이 피해를 보게 된다고 맞섰다. 금융 당국도 자기부담금은 보험사들이 돌려주지 않아도 되며, 이 같은 분쟁으로 자기부담금 제도가 사라질 경우 오히려 다수 보험 가입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는 입장이다.
지난 7월 서울중앙지법은 보험사들이 자기부담금을 돌려줘야 된다고 원고 승소 판결했었다. 하지만 최근 수원지법 안산지원 재판부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하급심에서 엇갈리는 결과가 나온 것이다.
재판부 “자기부담금 내고 보험료 감액은 소비자의 선택”
수원지법 안산지원 재판부는 자기부담금은 보험가입자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고, 보험료 감액 등의 효과를 내는 제도라고 했다. 만약 보험사가 자기부담금을 돌려줘야 할 경우 이 같은 제도의 장점이 모두 소멸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원고들의 청구가 인정된다면 상대방 운전자들도 원고들의 보험사들에게 자기부담금을 청구하게 될 것이고, 이럴 경우 사실상 자기부담금 제도가 사라지게 된다는 취지다.
재판부는 또 원고들은 이미 자기부담금 계약을 선택하고 보험료를 감액 받았는데 자기부담금을 부담하지 않게 될 경우 원고들이 일방적으로 이익을 보는 부당한 결과가 나오게 된다고 했다.
재판부는 또 자차보험은 필수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책임보험’에 속하지 않으며 자기부담금을 내기로 약정하고 보험료를 감액 받은 것은 소비자들의 선택이라고 했다. 자기부담금은 소비자가 스스로 부담해야 할 비용으로 인식했다고 보는 게 합당하다는 것이다.
현재 보험사들은 지난 2020년 관련 문제가 제기된 이후 자기부담금을 낸 가입자가 상대방 보험사에게 금액을 청구할 수 없다고 약관을 개정한 상태다.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는 “자차보험으로 차량을 수리할 경우 자기부담금은 가입자가 확정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하급심 판단이 엇갈리는 상황에서 자기부담금 관련 분쟁은 대법원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약관 개정 이전 사고가 나서 자기부담금을 부담한 경우 반환이 가능한지 여부는 소송의 최종적인 결과에 따라 달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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