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수 대법원장이 ‘거짓 해명 논란’을 놓고 지난 19일 밝힌 사과문에 대한 사법부 내부의 반응은 한 마디로 “마지막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일선 법관들 사이에서는 “사과문이 아니라 설명문” “‘마이웨이’ 선언”이라는 등의 냉소적 반응이 나오고 있다. 김 대법원장이 사과문에서 특히 강조한 ‘좋은 재판’을 두고는 현직 고등법원 부장판사가 법원 내부망에 “민주공화국은 특정 공동체에 좋은 재판만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글을 올려 날을 세웠다.
윤종구 서울고법 부장판사는 22일 오전 법원 내부망 ‘코트넷’에 ‘민주공화국은 특정 공동체에 좋은 재판만을 하지 아니한다’는 제목의 글을 올렸다. 윤 부장판사는 “‘좋음’이 모두가 아니라 일부에게만 인정된다면 ‘바름’과 ‘좋음’의 분리, 괴리가 생긴다”며 “특정 공동체에만 좋은 재판은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고 밝혔다.
앞서 김 대법원장이 사과문에서 “취임 후 모든 노력의 궁극적 목표는 ‘독립된 법관’에 의한 ‘좋은 재판’을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것”이라고 언급한 것을 두고 ‘편향돼 있다’고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윤 부장판사는 지난 5일에도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의를 반려한 것을 두고 코트넷에 “법관직에서 나가는 건 헌법이 보장한 직업선택의 자유”라는 비판글을 올렸다.
다른 다수 법관들도 김 대법원장의 사과를 두고 실망감을 표시하고 있다. 결정적인 대목은 김 대법원장이 임 부장판사의 사직 의사를 반려하면서 “정치적 고려가 있지 않았다”고 언급한 것이다. 이는 임 부장판사가 공개한 음성파일 및 녹취록 내용과 모순이다. 음성파일에는 “사표 수리 제출 그러한 법률적인 것은 차치하고”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는 김 대법원장의 육성이 명확히 확인된다.
한 지방법원 부장판사는 “사과는 사실관계 인정에서 출발하는데 첫 단계인 녹취록 내용 인정부터 일단 실패했다”며 “만회할 기회가 없어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건 사과문이 아니라 자기 정당성을 강조하는 설명문”이라고 아쉬움을 표했다. 다른 재경지법의 부장판사도 “사과는 과거의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앞으로의 일을 말하는 건데, 두 가지 모두 추상적인 수준에 그친다”며 “너희는 너희대로, 나는 나대로 그냥 가겠다는 내용”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사과 시점을 놓고도 뒷말이 나오고 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 이하급의 대규모 인사 이동이 있는 22일을 목전에 둔 주말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이 사과문을 공개한 지난 19일은 일선 법관들이 자리 정리를 하고 이사 준비를 하는 시점이었다. 한 법관은 “다들 인사 이동 때문에 정신이 없었다. 어수선한 틈을 타서 사과문을 내셨다”고 했다.
김 대법원장은 조재연 법원행정처장, 김형두 행정처 차장 등 참모들과 사과의 시기와 내용을 고민 중이었다고 한다. 다음 달 초 법원장회의에서 입장을 내는 등의 방안도 배제하지 않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러던 중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의 지난 17일 항의 방문을 하자 사과 시점을 앞당기게 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 내부에서는 김 대법원장의 ‘부실 사과’에 대한 집단적인 의사 표시가 나오기는 어렵다는 전망이 크다. 김 대법원장의 사과문은 댓글을 달 수 없는 공지로 올라와 있는 상태다. 그나마 대법원장에게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전국법관대표회의는 2월 정기 인사로 인해 각 법원에서 대표를 새로 뽑아야 하는 상황이다. 한 법원 관계자는 “앞으로 이렇게 쭉 가지 않겠느냐. 판사들도 의욕을 잃었다”고 말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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