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원구 중계 본동 104번지 일대. 일명 백사마을. 백사마을은 서울의 마지막 판자촌으로 과거 개발을 위해 용산과 청계천, 영등포 등 판자촌 주민을 강제 이주시키며 생겼다.

마을 초입부터 재개발을 앞두고 곳곳에 철거를 알리는 빨간 동그라미가 눈에 띄었다. 불피운 연탄에서 나오는 연기만이 이곳에 사람이 사는 곳이라 알려줄 뿐, 황량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지난주 강한 한파를 견뎌낸 백사마을을 찾았다.

백사마을 연탄 은행 옆 공중화장실부터 한파를 견디지 못했다. 이곳을 관리하는 구청 관리인은 전기 열선에도 불구하고 수도가 얼어 청소할 수 없다며 엉망이 된 화장실을 뒤로 한 채 발길을 돌렸다.

눈이 쌓인 가파른 언덕에선 주민들이 조심조심 발걸음을 떼고 있었고 폐허가 된 담벼락에는 고양이가 뛰어다녔다. 사람 인기척에 멀리서 개 한 마리가 짖는 소리만 마을에 울려 퍼졌다.

추운 날씨 인근 닭장에서 배고픔을 견디지 못하고 탈출한 닭 한 마리도 보였다. 20년 살던 아파트를 처분하고 이곳으로 이사를 온 주민 A씨는 닭에게 모이를 주고 있었다. A씨는 “재개발이 늦었지만 사고 없이 잘 진행됐으면 좋겠다”며 새해 소망을 밝혔다. 중계동 학군이 좋아 집값 상승 기대가 있다는 말도 덧붙이며 닭을 잡아 종이 상자에 넣었다. 생존을 위해 탈출한 닭은 그렇게 다시 주인의 손으로 돌아갔다.

백사마을의 한 슈퍼에선 곽모(82)씨가 2리터 생수 6병을 사고 있었다. 5년째 요양보호사로 이곳을 다닌 곽 씨는 마스크를 쓴 채 가파른 언덕을 올랐다. 요양보호 거주지에 수도가 얼어 당장 쓸 물이 없어서였다. 수도가 얼어 생활에 필요한 물을 빌리려던 곽 씨는 “주변 집들을 찾았지만 처음 한 번 빌려준 뒤 끝이었다”며 삭막해진 마을의 분위기에 아쉬움을 토로했다. 퇴직 후 아픈 아내의 병간호를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한 곽 씨는 지금은 한 마을주민을 담당하고 있다.

재개발을 앞두고 이제는 10%의 주민들만 백사마을에 남아 있다. 그동안 독거 노인들에게 무료 급식을 진행하던 평화의 집도 코로나19로 운영을 중단한다는 알림을 대문에 붙여 놨다.

가뜩이나 거주하는 주민들이 줄어 황량한 느낌까지 드는 백사마을은 올해가 힘든 겨울나기의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최현규 기자 frosted@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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