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전취식(사기) 혐의로 체포되는 과정에서 경찰관을 때린 40대가 최근 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에 일선 경찰들은 “법과 현장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 “사기를 꺾는 판결”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지난 9일 청주지법 고승일 부장판사는 공무집행방해 혐의로 기소된 A씨(47)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고 부장판사는 “치킨집 주인이 술값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전했고 경찰관이 피고인의 가방을 열어 신분증이나 술값을 지불할 카드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을 고려하면 피고인에게 무전취식 혐의를 물을 만한 사정이 인정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법성이 결여된 직무 행위를 하는 공무원에게 대항해 폭행이나 협박을 가한 것은 공무집행방해죄의 구성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청주에 사는 A씨는 지난해 10월 3일 오전 2시쯤 만취한 상태로 동네 치킨집을 찾았다. A씨는 치킨집에서 술을 더 마셔 인사불성이 됐고 집에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에 치킨집 주인은 결국 경찰에 신고해 도움을 청했다.
치킨집 주인은 “술값은 얼마 되지 않으니 A씨가 돌아가게만 해달라”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들에게 부탁했다. 경찰관들은 A씨에게 신분증이나 전화번호를 맡기고 가게에서 나갈 것을 수차례 요구했으나 A씨는 되레 경찰관에게 욕을 하고 자신의 가방을 주며 뒤져가라는 식으로 말했다.
경찰은 결국 A씨를 무전취식 혐의로 현행범 체포했다. 이 과정에서 저항하던 A씨는 팔로 경찰관의 얼굴을 때렸다. 그러나 법원은 이 같은 A씨의 행동이 공무집행방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이러한 판결 내용이 알려지자 경찰 내부망 게시판 ‘현장활력소’에는 “법과 현장의 괴리를 보여주는 사례” “매일 밤 주취자와 씨름하는 일선 경찰관들의 사기를 꺾는 판결”이라는 등의 의견이 잇따라 달렸다.
지난 13일 울산의 한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작성한 게시글 조회수는 18일 기준 1만6000건을 넘어섰다. 댓글도 160여개가 달렸다. 댓글 중 하나는 “주취자가 신분증을 제시하지 않는 상황에서 경찰관이 동의 없이 가방을 뒤지는 것도 불법이 된다”며 “만약 무전취식 행위자를 체포하지 않았다면 경찰이 소극적인 대응을 했다며 비판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검찰은 이 같은 1심 판결이 부당하다며 항소한 상태다.
‘지역경찰 매뉴얼’은 상대방 동의나 영장이 없는 상태에서 가방을 임의로 뒤져 신분을 확인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한편 형사소송법상으로는 5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해당하는 죄의 현행범에 대해서는 주거가 분명하지 않을 때에 한해 현장 체포가 가능하다.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