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가 특별히 없고 휴게시간에 ‘힐링’할 수 있는 거리를 찾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독특한 책이 꾸준히 인기를 끌고 있다. 서점을 비롯한 출판계에서는 읽기에 집중하는 기존 책의 형태와는 다른 ‘액티비티 북’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액티비티 북’에는 사용자가 읽기 외에도 상호작용하는 방법이 많다. 책에 색칠하고 스티커를 붙이는 것을 넘어 심지어 페이지를 찢어야 하는 책이 출시되기도 했다. ‘취미·자기계발’ 영역으로 분류된다.
‘액티비티 북’의 역사는 우리나라에서는 1970년대부터 시작됐다. 문방구에서 어린이들에게 팔던 종이인형, 색칠연습책 등이 그 시작이다. 출판사에서는 ‘액티비티 북’이 어린이의 정서를 안정시키고 뇌 발달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홍보하고 있다.
최근에는 키덜트(Kidult·어린이를 뜻하는 Kid와 성인을 뜻하는 Adult의 합성어) 시장이 커지면서 이에 관심을 갖는 성인들도 다수 생겼다. 이들에게 ‘액티비티 북’은 어린 시절 향수를 되살릴 수 있는 추억의 대상이자 장난감 중 하나다.
지난 몇 년 동안에는 색연필이나 붓 등으로 페이지를 직접 색칠하는 형태였던 ‘컬러링 북’이 인기였다면 최근에는 ‘스티커 북’이 인기를 이끌고 있다. ‘스티커 북’은 어린이용 캐릭터 스티커 북이 아니라 명화, 자연 경관, 동물 그림 위에 퍼즐처럼 조각이 나뉘어진 스티커를 붙여 완성하는 형태다. 빈 공간에 퍼즐처럼 스티커를 붙일 곳이 숫자로 정리돼있는데, 독자는 책 귀퉁이나 뒤편에 마련된 스티커를 떼 빈 공간을 스티커로 채우면서 그림을 완성하게 된다.
스티커 북은 컬러링 북과 달리 독자가 무슨 색을 칠해야 할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스티커 북을 이용해 퇴근 후 ‘힐링’ 시간을 즐기고 있다는 이유진(27)씨는 “퇴근하면 오후 여덟 시가 넘는데 바로 잠들기는 아깝고 다른 취미생활을 갖기엔 시간이 부족해서 시작했다”며 “컬러링 북은 자기가 무슨 색을 칠해야할 지 정해야 하는데 이런 선택이 즐거울 때도 있지만 고민이 될 때도 있는데, (스티커 북은) 색을 고민할 필요도 없고 섬세하게 붙이기만 하면 돼 집중이 더 잘 된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스티커 붙이기 같은 단순 작업이 복잡한 업무에 치진 현대인에게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스티커를 섬세하게 붙이거나 색을 칠하는 반복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고민도 한 걸음 떨어진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는 것이다. 어릴 때 즐겼던 문화를 통해 향수를 느끼고 자기가 완성한 그림을 SNS에 공유하는데, 이런 활동들이 ‘관심을 불러 일으키려는 추세’와 맞아떨어진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액티비티 북’이 성인의 정신적 퇴행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김성신 출판평론가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액티비티 북’ 등을 구입해 단순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현상을 ‘개인들이 심리적 피난처를 찾으려는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부정적인 면을 많이 접한 현대인들이 문제제기가 담긴 책을 읽기보다는 색칠, 스티커 붙이기 등을 하며 세상사를 잊으려는 것”이라고 분석하며 “심리적 피난처 역할을 하는 (액티비티 북 등은) 책의 기능을 갖지는 못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지자체와 정부 기관에서는 액티비티 북을 범죄피해자에 대한 지원체계로 활용하거나 재교육용 교재로 활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서점가에서는 이들 ‘액티비티 북’이 ‘베스트셀러’만큼의 인기를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수요가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의 한 직원은 “2016년 때처럼 폭발적인 인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액티비티 북 등의) 비슷한 제품군을 중심으로 일정한 판매량이 유지되고 있다”며 “방송이나 SNS를 통해 유명인들이 사용하는 모습이 꾸준히 노출되는 것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고 밝혔다.
김종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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