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배 의사들에게 대리수술을 시키고, 그 특진료를 가로채고, 야구방망이 등으로 상습 폭행한 대학병원 의사들이 경찰에 입건됐다. 부산 서부경찰서는 모 대학병원 A교수(50) B교수(39) C교수(34)를 불구속 입건해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고 11일 밝혔다.
A교수는 지난해 1월부터 10월까지 자신의 수술 일정이 출장이나 외래진료와 겹칠 경우 같은 과 후배인 B교수에게 맡겼다. 23차례 대리수술을 시킨 뒤 자신이 수술한 것처럼 진료기록부를 거짓으로 작성하고 특진료 14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B교수는 2013년 8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수술실에서 환자 관리를 못 한다는 이유로 후배 전공의 11명을 50여차례에 걸쳐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B교수에게 폭행당한 전공의들은 고막이 파열되거나 온몸에 시퍼런 멍이 든 사실이 지난해 국정감사 때 드러났다.
C교수는 2012년 10월부터 2015년 12월까지 당직실에서 후배 전공의에게 뒷짐을 지고 머리를 땅에 박도록 하는 일명 ‘원산폭격’을 강요하고 알루미늄 야구방망이 등으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 10차례에 걸쳐 전공의 12명을 상습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다.
◇ 국감서도 지적된 ‘전공의 폭행’
지난해 10월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이 ‘지도교수의 전공의 폭행’ 문제를 지적했다. 유 의원은 “지도교수는 수술기구를 이용해 전공의들을 구타했고 일부 전공의는 회식 후 길거리에서 맞기도 했다”며 “심지어 주먹에 맞아 고막이 파열되기도 하는 등 폭행은 무자비하게 이뤄졌다”고 폭로했다.
유 의원은 해당 대학병원장에게 “지난 8월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무슨 조치를 취했나”라고 따지며 “교육부와 보건복지부, 국가인권위 등 관련 기관이 특별조사를 하도록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 병원장은 “실상을 파악하라고 지시를 내렸고 징계위를 통해 처벌 강도를 높이도록 고려하겠다”고 답변했다.
같은 당 전재수 의원은 “요즘은 군대도 이렇게 안 한다”며 “피해 전공의 전체 대면조사를 실시해 진실을 제대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유한국당 한선교 의원도 “징계로 끝날 문제가 아니고 전국 대학병원의 폭력실태 전수조사를 실시한 뒤 폭행사건에 연루된 교수는 사법당국에 고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 폭행과 관련한 민원이 접수됐던 다른 대학병원에 대해 ‘전공의의 수련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전공의법)에 따라 2년간 레지던트 채용 금지와 인턴 정원(44명)의 5%를 감원하는 행정처분을 내렸다. 과태료도 100만원 부과했다. 관련법이 시행된 이후 이뤄진 첫 번째 행정처분이었다.
복지부 내에 설치된 수련환경평가위원회는 지난해 6월 폭행 피해자인 이 대학병원 정형외과 전공의로부터 민원을 접수한 후 두 차례 현지조사를 통해 폭행 피해와 입사 전 사전근무 지시, 상급연차의 임의 당직명령 등의 사실을 확인했다.

◇ 당해도 말하기 힘든 전공의들
서울의 한 대학병원 전공의 A씨는 지난해 6월 대한전공의협회(대전협)에 도움을 요청하는 메일을 보냈다. 학교 교수 한 명의 폭언에 따른 고통을 호소하는 내용이었다. 수술 준비를 잘 못했다는 이유로 “너는 개다. 너 같은 XX가 왜 사는지 모르겠다” “너 같은 XX는 개같이 모욕을 줘야 한다” 등의 폭언을 들었다는 사연이 담겼다. 교수가 자신의 논문자료 영어 번역을 전공의에게 맡기는 등 개인비서처럼 부렸다는 내용도 있었다.
대전협은 규정상 피해자가 직접 보건복지부에 제보하거나 법적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러자 A씨는 제보를 포기했다. 대전협 관계자는 “협회 차원에서 대응하지 못하면 본인이 더 큰 피해를 볼까 우려한 듯 싶다”고 설명했다.
교수들로부터 폭행·폭언을 들으며 인권유린을 당하는 전공의들이 2차 피해를 우려해 입을 다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해당 교수에 대한 징계가 솜방망이에 그치는 반면 피해자는 ‘배신자’로 낙인 찍혀 제대로 된 의사생활을 할 수 없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대전협 관계자는 “(폭행·폭언 등에 관한 제보 내용을 들어보면) 전공의들이 버틸 수 있는 한계까지 버티다 더 견디지 못하는 경우만 연락해 온다”며 “현장에서 실제로 폭행·폭언을 당하는 사례는 더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규정상 피해자 본인이 직접 복지부에 제보하거나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는 조언을 하면 제보를 포기하는 사례가 대부분”이라고 설명했다.
전공의들은 의사 직업 특성상 내부고발자 신분이 철저히 보호되기 힘들다고 토로한다. 교수에게 폭행을 당했다는 한 전공의는 “병원에 알리더라도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거나 전공의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경우가 많다”며 “의사 가운을 벗을 각오를 하지 않고서는 문제 삼기 힘들다”고 말했다.
위반사항에 대한 행정처분 역시 약하다. 복지부는 병원에 폭행 가해자에 대한 해임 등 처분을 요구할 수 없고, 벌칙도 전공의법에 따른 정원 감축 정도에 그친다. 병원장(수련병원 등의 장)에게 부과하는 과태료 최고액도 500만원에 불과하다. 전공의 정원 감축 조치가 내려지면 후임 전공의가 들어오지 않아 업무량만 늘어난다.
태원준 기자 wjt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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