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65·구속 기소) 전 대통령이 23일 법정에 선다.
전직 대통령이 형사 법정에 서는 건 1996년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어 헌정 사상 세 번째다. 국민이 선출한 최고 국가 지도자가 피고인석에 서는 부끄러운 역사가 21년 만에 재현됐다.
박 전 대통령은 23일 오전 10시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부장판사 김세윤) 심리로 열리는 592억원대 뇌물 혐의 등의 첫 공판기일에 출석한다. 이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8주기이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은 오전 8시40분쯤 서울구치소를 출발해 서울 서초동 법원청사로 향할 예정이다. 지난 3월 31일 구속 이후 53일 만에 처음 구치소 밖을 나서는 셈이다.
박 전 대통령이 탑승할 호송차에는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교도관 외에 다른 수감자는 탑승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등에 따르면 박 전 대통령 호송차 앞뒤로 경찰 오토바이가 1대씩 배치된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경찰차 1대와 경찰 오토바이 5대도 동행한다.
경찰 관계자는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경호는 실시하지 않는다”며 “이동로 안전 확보 차원에서 필요·최소한의 교통관리를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경찰은 법원 측 요청이 있을 경우 재판정 내부와 법원 주변 질서 유지 인력을 지원할 예정이다.
'역사적 법정' 417호 대법정
박 전 대통령은 법원 도착 후 재판 시작 전까지 대기 공간에 머무른다. 재판장 김세윤 부장판사의 입정(入廷) 지시에 따라 417호 대법정 피고인석으로 이동하게 된다.
417호 대법정은 전·노 전 대통령을 비롯해 고위 공직자·재벌 총수들이 거쳐 간 ‘역사적 법정’으로 불린다. 김영삼 전 대통령 장남 현철씨와 정태수 한보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이 이 법정에서 재판을 받았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은 1995년과 2008년 두 번이나 417호 대법정에 섰다.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도 현재 이곳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박 전 대통령은 ‘40년 지기’이자 국정농단의 공범 최순실(61·구속 기소)씨와 나란히 피고인석에 앉게 된다. 뇌물 공여 혐의로 함께 기소된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도 동석한다.

재판부는 사건의 중요성과 국민적 관심사 등을 고려해 박 전 대통령의 법정 출석 모습을 언론에 공개한다. 다만 박 전 대통령 등이 출석하고 재판부가 개정을 선언하기 전까지만 사진·영상 촬영이 이뤄진다.
앞서 최씨와 안종범(58)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 등의 법정 출석 장면이 언론에 공개됐었다. 차은택(48) 전 창조경제추진단장과 최씨 조카 장시호(38)씨 등의 모습도 대중에 드러났다.
이날 박 전 대통령의 트레이드 마크인 ‘올림머리’는 찾아보기 어려울 전망이다. 구치소 내 머리핀 등의 반입이 금지돼 있기 때문이다. 차 전 단장은 삭발한 모습으로 법정에 나와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박 전 대통령은 수의(囚衣) 대신 사복 차림으로 나올 전망이다. 대신 왼쪽 가슴에 수인번호 '503'가 적힌 표찰을 달아야 한다. 법정에 들어서기 전 포승줄과 수갑 등은 모두 해제된다.
이날 417호 대법정 150석은 사건 관계인과 취재진, 사전 추첨을 통해 선정된 방청객 68명이 자리할 예정이다.
박 전 대통령 “제 직업은…”
재판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인정신문 절차’가 진행된다. 피고인 이름과 생년월일, 거주지, 등록기준지(옛 본적) 등을 확인하는 절차다. 이는 변호인이 대신 답변할 수 없다. 김 부장판사의 물음에 따라 피고인이 직접 대답해야 한다.
박 전 대통령은 자신의 직업을 ‘전직 대통령’이나 ‘무직’이라고 답변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월 10일 헌법재판소 파면 결정 이후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 지위를 상실했다. 최씨의 경우 자신의 직업을 ‘임대업’이라고 했다. 안 전 수석은 “전 청와대 정책수석비서관이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이후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 등에게 진술거부권 등 피고인 권리를 고지한다. 국민참여재판을 희망하는지도 묻는다. 박 전 대통령 측이 참여재판을 원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정신문이 끝나면 ‘모두절차’가 진행된다. 박 전 대통령을 기소한 검찰 특별수사본부가 18가지 공소사실을 요약해 낭독한다. 이후 박 전 대통령 측이 혐의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앞서 박 전 대통령 측은 18가지 혐의를 모두 부인하면서 ‘이중 기소’ 등 법리적 쟁점을 제기한 상태다. 검찰의 무리한 법 해석 등을 부각시키며 박 전 대통령과 최씨 재판을 분리하고, 재판은 주 3일 미만으로 진행해 달라고 요구했었다. 재판부는 본격 재판 시작 전에 병합 여부에 대한 방침을 밝힐 예정이다.
박 전 대통령 첫 재판은 예정된 증인신문 등이 취소되면서 오후 늦지 않게 끝날 예정이다. 그러나 다음 재판은 24~25일 연이어 예정돼 있다.
지난해 11월 기소돼 이미 40여차례 이상 재판을 받아온 최씨는 매 재판마다 폭탄 발언을 쏟아내 왔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재판이 진행됨에 따라 다양한 주장을 직접 내놓을 가능성이 높다.
재판부는 박 전 대통령의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오는 10월까지 1심 선고를 마무리하겠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반대로 박 전 대통령 측은 ‘느린 심리’ 전략을 취하고 있다. 재판이 열릴 때마다 검찰과 박 전 대통령, 재판부 간의 팽팽한 법정공방이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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