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일수] 복합적 재난상황 유발자들

“실종된 직업윤리, 부처 이기주의, 퇴직관료들의 낙하산 인사 등에 근본적 개혁 필요”

세월호 참사와 같은 희대의 재난사고 밑바닥엔 개인들의 귀책사유로만 돌릴 수 없는 복합적 위험요인들이 얽혀 있게 마련이다. 또한 그 복합적 위험요인들은 장기간 누적되기 때문에 관행으로 치부되기 쉽다. 더 나아가 위험경고음을 일시 감지한 전문인들조차 이미 일상화된 먹이사슬 구조에 쉽게 길들여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복합적 위험 상황이 더 이상 스스로를 지탱할 수 없어 붕괴·폭발하거나 추락·침몰하게 되더라도 책임소재를 가리는 일은 그리 쉽지 않다.

세월호 참사의 책임을 단지 승객 구조를 내팽개치고 도망친 선원답지 않은 선원들 탓으로만 돌린다면 정말 웃기는 일이 될 것이다. 재난예방 시스템을 제대로 갖추고 이를 삶의 일부로 체득시키는 데 태만했던 당국자들, 돈벌이에 혈안이 되어 위험 운항을 감행한 운송사와 선주들의 책임은 이들보다 결코 가볍지 않아 보인다. 당국은 화물여객선의 수명을 10년이나 연장시키는 입법조치를 취해줬고, 선주는 일본에서 수명이 다해가는 고철용 선박을 싼값에 사들여 독점적인 항로에 투입했다. 탐욕적인 선주는 더 큰 수익을 올리기 위해 위험을 가중시키는 선박 구조변경을 감행했고, 위험 덩어리가 된 이 배의 개조와 위험을 무릅쓴 운항을 한국선급은 늘 허가하고 승인해 줬다. 운항의 안전을 감독하는 해운조합이나 해경도 녹슨 안전시설물을 눈감아주거나 대충 짚고 넘어갔다. 사고 선박이 악천후에 무리한 항해를 시작했을 때와 사고 발생 직후 이상 징후들을 진도 및 제주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주의 깊게 포착하거나 대응하지 못했다.

침몰 사고가 일어난 후 구조의 적기인 황금시간대를 해경과 재난구조 당국은 우왕좌왕하느라 소진해 버렸다. 3000여종의 재난 관련 매뉴얼이 있는데도 컨트롤타워가 없어서, 군·관·민 구조 인력들이 불협화음을 내며 중구난방이 된 사이에 더 건질 수 있었던 아까운 목숨들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사고후 십수일이 지나 생환을 기원하는 세계시민들의 실낱같은 희망마저 점차 희미해져 가는 이때 연일 국가개조론 같은 거창한 담론들이 난무하고 있다. 실종된 직업윤리, 부처 이기주의에 막힌 컨트롤타워, 관(官)피아로 속칭되는 퇴직관료들의 정부 유관기관 낙하산 인사, 이단 종교집단들의 ‘묻지마’식 사업 확장과 결핍된 공동체 의식 등등 정말 근본적인 국가제도와 국민의식 개혁이 필요한 때다.

세월호 침몰로 인한 괴로움이 깊어갈 무렵 어느 야당 정치인이 ‘지금은 정치인인 것이 부끄럽고 고통스럽다’고 한 말이 생각난다. 그 말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그들 정치인이 세월호 참사에 어떤 원인을 제공했는지부터 성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이 참사 예방에 직결된 해상 안전사고 관련 법안들을 무슨 정치적 현안과 연계해 흥정거리로 삼거나 차일피일 미루어 왔던 사람들이다. ‘선박의 입항 및 출항에 관한 법률’, ‘수난구호법’, ‘해사안전법’ 등이 국회에서 방치된 사이 재난은 강도같이 임했다. 온 국민을 단장(斷腸)의 슬픔으로 몰아넣은 데는 이들 입법부작위도 한몫했다고 본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제한된 국가 예산을 틀어쥐고 은밀한 흥정을 벌여 선심성 지역예산을 빼가는 데 이골 난 사람들이다. 그 결과 정작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데 써야 할 시설설비 개선, 연구·개발 사업 등에는 국고 지원이 줄곤 했다.

오늘날 국회의원들의 의정활동에서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본연의 모습은 점차 약해지고, 지역구의 일꾼임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는 모습이 두드러지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국회 본연의 임무는 누가 뭐라 해도 입법이다. 특히 민생과 국민안전, 국가안보에 속한 입법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실질적인 국익이 무엇인가에 중지를 모으고,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마땅하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요,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자이지 결코 지역 이익의 대변자가 아니다. 지역이기주의의 대변자임을 자처하고 싶은 정치인은 아예 금배지를 빼서 물에 던지는 편이 더 낫겠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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