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손영옥] ‘솔섬’에 자유를 허하라
국내 유수의 사진 아트페어를 주최했던 관계자로부터 예상치 못한 하소연을 들은 적이 있다. 시작한 지 몇 년 안돼 입장객이 8배 뛰었으니 즐거운 비명을 지를 처지였는데도 말이다.
“구경 오는 사람은 많지요. 한데 팔리지가 않아요. 우리나라 사람들은 다들 자기가 사진작가라고 생각하거든요.”
한마디로 높은 DSLR카메라 보급률이 낳은 한국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아트페어라면 작품을 팔기 위한 장터 아닌가. 하지만 ‘나도 아마추어 사진작가’라는 생각이 퍼져 있어 사진을 구매해야 하는 작품으로 보는 인식 형성을 가로막는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영국 작가의 사진 표절논란
주말이면 DSLR카메라를 메고 전국을 누비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들로 넘쳐난다. 이런 상황이 낳은 저작권 소송이 요즘 문화계의 화제다. 영국 사진작가 마이클 케나의 흑백 사진 작품 ‘솔섬(Pinetree Island)’ 표절 논란이다. 강원도 삼척의 ‘솔섬’ 사진으로 유명한 케나 측이 자신의 작품과 유사한 구도로 찍은 김성필 작가의 사진을 광고에 사용했다는 이유로 대한항공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한 것이다. 김 작가는 대한항공 주최 여행사진 공모전에 이 작품이 당선되기 전엔 아마추어 사진작가였다고.
사진을 둘러싼 표절 소송은 해외에선 드물지 않다. 특히 ‘차용’(기존 이미지를 활용해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이 부상하면서 증가하는 추세다. 가장 회자되는 건 1980년대 후반 미국에서 ‘현대미술계의 악동’ 제프 쿤스를 상대로 제기된 소송이다. 쿤스는 사진작가 아트 로저스가 강아지 8마리를 안고 벤치에 앉은 남녀를 찍은 작품(String of Puppies) 이미지를 ‘차용’해 조각을 만들고 전시회를 열었다. 더욱이 같은 걸 여러 점 만들어 점당 34만 달러 이상에 팔았다. 로저스는 저작권 침해 소송을 냈고 이겼다. 사법부는 “표현 매체가 바뀌었으니 정당하다”는 쿤스의 변론을 기각했다. “작가가 어떤 새로운 기여를 하지 않았다면 예술작품을 ‘차용’한 것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새 메시지를 담은 것도, 창의성이 가미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솔섬 건의 표절 여부도 새로운 사진에 창의성이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대한한공 측은 김 작가 작품이 “역동적인 구름과 태양 빛을 살려 다양한 색채로 표현한 것으로 케나의 작품과 전혀 다르다”며 독창성을 주장한다. 케나 측은 “흑백과 컬러라는 점을 제외하면 촬영구도와 이미지가 동일하다. 모방작을 광고에 사용하다니 실망스럽다”고 반박한다.
새로운 창의성 유무가 핵심
그러므로 관심의 초점은 케나의 구도가 독창성이 있느냐에 모아진다. 케나 측은 “사진에서 앵글은 생명이다. 누구나 찍을 수 있는 (구도의) 사진이 아니다”고 말했다.
솔섬은 케나 이전에도 무수한 사람들이 찍었다. 잘 아는 아마추어 사진작가는 “사람들 심미안이 비슷해 구도가 좋은 곳에는 꾼들이 모여들기 마련”이라고 했다. 케나의 작품은 과연 이전에 비슷하게 찍힌 작품들에 비해 구도를 뛰어넘는 예술적 창작성이 있는 걸까. 그걸 증명해야 하는 건 케나의 몫이다.
케나는 대단한 작가다. 그의 작품 제목 때문에 ‘속섬’이라는 원지명 대신 이젠 ‘솔섬’으로 불린다. 하지만 케나의 유명세는 무시하자. 본질은 창의성 여부다. 사진에서 창의성은 작품에서 느껴지는 아우라일 것이다. 아니면 뒤샹식의 새로운 발견, 혹은 전혀 다른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저작권 보호는 또 다른 창의성을 꺾는 족쇄다. 케나의 촬영지점을 모르면서 같은 구도의 사진을 찍었다는 그 사진작가의 말은 그래서 울림을 갖는다. “그런 식으로 저작권을 주장하면 세상을 살아갈 수가 없지요.”
손영옥 문화생활부장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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