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강왕 박태준 타계] 영일만 모래사장서 ‘제철 강국’ 신화 일궈낸 鐵人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이 13일 오후 5시쯤 지병으로 별세했다. 1927년생으로 향년 84세. 박 명예회장은 지난달 9일 호흡 곤란 증세로 세브란스 병원에서 흉막-전폐절제술을 받고 회복되는 듯했으나 지난 5일 다시 악화되면서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박 명예회장은 10여년전 흉막섬유종이 발견돼 미국에서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폐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는 등 후유증에 시달린 것으로 알려졌다.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국내 철강산업을 세계 최고 수준에 올려놓은 주역이다.
육군사관학교 6기생인 그는 1964년 12월 대한중석광업 사장에 취임하며 철강업과 인연을 맺게 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67년 2차 경제발전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면서 종합제철소 건설을 핵심사업으로 내세웠고 그에게 제철소 건설을 지시한다.
하지만 기술도 돈도 없는 우리나라가 제철소를 짓는 건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정부는 선진국의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미국, 서독, 영국, 이탈리아, 프랑스 등 5개국 8개 회사가 참여한 대한국제제철차관단(KISA)을 구성해 자금지원을 이끌어내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하지만 대일청구자금으로 돌파구를 찾는다. 이 자금은 양국 정부가 농림수산업 발전을 위해 쓰기로 합의한 것이지만 일본을 설득해 제철소 건설에 전용할 수 있도록 했다.
제철소 부지는 당시 모래사장뿐이었다. 박 회장은 2008년 포스코 창립 40주년 기자회견에서 “대통령이 첫 삽을 뜨러 포항에 내려오는 순간 고생문이 열리는 게 보였다. 앞으로 얼마나 고생해야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박 전 대통령도 “남의 집 다 헐어놓고 제철소가 되긴 되는 건가”라고 의구심을 품었다.
박 회장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공사현장과 제철소를 다니며 직원들을 독려했다. 그는 “지금 건설하는 제철소는 선조들의 피값(대일청구자금)으로 짓는 것이다. 실패하면 문책이나 사표로 끝날 일이 아니다. 잘못되면 ‘우향우’ 해서 영일만 앞바다에 빠져 죽어야 한다”며 비장한 마음으로 직원들을 독려했다. 당시 건설사무소 오른쪽이 바다였기 때문에 바다에 빠져 죽을 각오로 일하라는 의미였다. 포스코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우향우 정신’이 이때 나왔다.
어려움 끝에 70년 4월 1일 조강 연산 103만t 규모의 1기 설비를 착공한 데 이어 73년 6월 9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용광로를 준공해 뜨거운 쇳물을 쏟아내게 된다. 76년 5월 260만t 체제 2기 설비가 준공됐다. 박 회장은 85∼92년까지 바다를 메워 세계 최대 단일제철소인 광양제철소를 건립하는 일도 진두지휘했다. 포스코는 현재 조강 연산 기준으로 4위의 제철소로 성장했다.
제철소 건립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빠른 시간에 이뤄졌다. 하지만 부실공사를 용납하지 않았다. 77년 3기 설비 공사 도중 발전 송풍 설비 구조물 공사에서 부실이 발견되자 박 회장은 이미 80%의 공사가 진행된 상태에도 모두 폭파할 것을 지시했다. 우수 인력 유치를 위해 제철소 건설 전에 사원용 주택을 건설하고, 깨끗한 몸가짐이 완벽한 제품을 만든다며 직원들에게 목욕을 강조한 ‘목욕론’도 그의 독특한 경영 철학으로 꼽힌다. 수십년을 제철보국(製鐵報國)의 일념으로 헌신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준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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