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재 보험업계 최대 현안 중 하나는 ‘삼성생명 일탈 회계’ 논란이다. 회계기준원이 지난 8월 처음 문제를 제기하며 수면 위로 떠올랐는데 이찬진 금융감독원장이 이달 초 “국제 기준에 맞춰 정상화하겠다”고 발언하면서 논란에 불을 붙였다. 삼성생명의 명운을 가를 회계기준원의 ‘적용 의견서’ 발표 시기가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일탈 회계가 무엇이고, 왜 문제인지 짚어봤다.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회계기준원은 삼성생명에 적용할 새 회계 처리 방침을 담은 적용 의견서를 오는 11월 내는 것을 목표로 학계 등 전문가 의견을 모으고 있다. 적용 의견서에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금융사의 회계 처리를 관리 감독하는 금융 당국이 중점적으로 참고한다. 이번 사안처럼 국제 회계 기준까지 참고해야 하는 사안이 생기면 회계기준원과 금융감독원이 공동으로 연석회의를 개최하고 협의한 후 결정하므로 사실상 적용 의견서에 담기는 내용이 행정 지도 기준이 된다.
삼성생명 일탈 회계 논란은 쟁점이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삼성생명이 과거 고객에게 ‘유배당 상품’을 팔고 받은 보험료로 산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주식의 평가 차익을 고객에게 돌려줄 ‘보험 부채’ 대신 ‘계약자 지분 조정’이라는 별도의 부채 계정으로 공시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삼성생명이 자회사인 삼성화재의 실적을 지분율만큼 연결해 공시해야 하는 ‘관계 기업’으로 분류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첫 사안의 시작은 19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생명은 이때부터 90년대까지 유배당 상품에 가입한 고객의 보험료를 모아 삼성전자와 삼성화재의 주식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삼성생명은 총 5400억원가량을 들여 주당 평균 1072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삼성전자 주식 약 5억800만주를 사들였다. 지분율로 따지면 8.51%에 해당하는데 이는 이재용 회장이 삼성전자를 필두로 그룹을 지배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삼성생명의 최대 주주는 지분 19.34%를 보유한 삼성물산인데 삼성물산은 이 회장(지분율 19.76%)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이 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지배구조가 가능했다. 삼성생명은 이 기간 유배당 상품 보험료로 삼성화재 주식도 사 총 14.98%의 지분을 확보했다.
삼성생명이 삼성전자·삼성화재 주식을 매입한 자금은 유배당 상품 보험료에서 나왔다. 유배당 상품은 보험사가 보험료를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굴린 뒤 발생한 초과 이익의 대부분을 고객에게 돌려줘야 한다. 당시 유배당 상품 약관에는 ‘연 6~7% 수준의 높은 이자를 주고 투자 금융 자산에서 발생한 운용 수익률이 보험금 적립 이자율보다 높으면 배당금을 주겠다’고 적혀 있었다.
고객에게 돌려줘야 하는 돈은 사실상 부채에 해당하므로 회계상 보험 부채로 쌓아둬야 한다. 하지만 삼성생명은 “삼성전자·삼성화재 지분을 매각할 계획을 세울 수 없다”며 보험 부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금융 당국은 새 보험 회계 기준인 ‘IFRS17’ 도입을 한 달 앞둔 2022년 12월 삼성생명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삼성생명이 고객에게 돌려줘야 할 돈을 보험 부채가 아닌 ‘계약자 지분 조정’이라는 별도의 회계 항목에 적립하도록 허용한 것이다. 이 때문에 일탈 회계라는 이름이 붙었다.
금융 당국으로부터 일탈 회계를 허락받은 삼성생명이 지난 6월 말 기준 계약자 지분 조정 항목으로 적립해두고 있는 금액은 9조원에 육박한다. 이 돈은 삼성생명의 일탈 회계가 인정되고 삼성전자·삼성화재 주식이 처분되지 않는 한 고객에게 지급할 의무가 없다.

문제는 지난 2월 벌어졌다. 정부가 한국 증시의 만성 저평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각종 정책을 추진하는 가운데 삼성전자가 자사주 3조원어치를 소각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자사주를 소각하면서 분모에 해당하는 주식 총량이 줄었고 이 때문에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율이 10%선을 넘길 가능성이 생겼다. 삼성생명은 금융사의 비금융 계열사 지분 10% 초과 보유를 금지하는 금융산업법을 지키기 위해 같은 달 삼성전자 지분을 일부 팔았다. 현행법을 지키기 위한 조치였지만 결과적으로 삼성생명 일탈 회계의 ‘삼성전자 주식 무매각’ 전제가 무너진 것이다.
두 번째 사안도 첫 사안과 맞닿아 있다.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의 지분을 보험업법상 자회사 기준 상한선(15%)을 약간 밑도는 14.98%만큼만 보유해왔다. 이에 따라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을 ‘기타 포괄 손익-공정 가치 측정 금융 자산’(이하 금융 자산)으로 처리해왔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화재 주식은 주가 변동에 따른 지분 평가액과 배당금 등이 자본으로 반영될 뿐 삼성화재 실적은 삼성생명 재무제표에 반영되지 않았다.
문제는 삼성화재가 삼성전자와 같은 목적으로 지난 4월 자사주를 소각하기로 하면서 발생했다. 삼성생명의 삼성화재 지분율이 15%를 넘겨 자회사 편입 요건을 충족하게 된 것이다. 회계기준원과 경제개혁연대 등은 같은 달 “삼성생명은 삼성화재에 오랜 기간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해왔다”면서 “이제 자회사가 됐으니 회계상 금융 자산이 아닌 관계 회사로 분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삼성화재가 관계 회사가 되면 지분율만큼의 당기순이익이 삼성생명의 순익에 연결된다. 이렇게 되면 과거 유배당 상품 보험료로 산 삼성화재에서 발생한 수익이 돼 일부를 고객에게 배당으로 돌려줘야 한다. 그동안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주식을 팔지 않았으므로(삼성화재에서 발생한 수익이 없으므로) 유배당 보험 상품 고객에게 돌려줄 돈이 없다”고 주장해왔는데 관계 회사가 되면 이 논리가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
삼성생명 측은 “삼성전자 주식을 일부 매각한 것은 현행법을 지키기 위한 조치로 일탈 회계의 전제 조건이 아니다”라면서 “삼성전자 주식을 일부 매각해 차익이 발생했다고 하더라도 유배당 보험 상품 계약자에게 높은 이자를 주고 있으므로 배당은 발생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진욱 기자 real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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