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산업에서 미국의 대(對)중국 견제가 본격화하며 글로벌 선주들이 제재 리스크가 있는 중국 업체에 대한 발주를 기피하는 모습이다. 반사이익을 누릴 것으로 전망되는 국내 조선사는 물량 소화를 위해 생산 기지 확대를 추진 중이다.
16일 조선·해운 전문지인 트레이드윈즈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조선업체에 대한 벌크선 주문량은 13건으로 전년 동기(143건) 대비 90.9%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993년 이후 32년 만에 최저치다. 벌크선은 철강, 석탄 등을 실어 나르는 선박으로 중국의 세계 시장 수주 점유율이 한때 60%에 육박했다.
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중국 조선업 견제에 따른 결과로 해석된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는 지난 1월 중국 정부의 해운, 물류 및 조선업에 대한 재정 지원, 외국 기업에 대한 장벽 등으로 미국 상업 활동을 저해하는 불합리한 행위가 발생했다며 중국 선사와 중국산 선박을 무역법 301조에 따른 제재 대상에 올렸다. USTR은 이달 말 미국 항구에 들어오는 중국 선박에 항만세를 부과하는 정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 입항하는 중국 해운사 선박에는 100만 달러(약 14억원), 중국에서 건조된 선박은 150만 달러의 수수료를 부과하는 방안이 유력하다. 현실화될 경우 중국산 저가 수주 매력이 크게 떨어지게 되는 셈이다.
그동안 중국 업체를 선호해왔던 글로벌 해운사들은 한국 조선소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업체 벤처 글로벌은 최근 HD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한화오션 조선소를 시찰하고 이들 조선사와 LNG 운반선 4척을 포함한 최대 12척의 선박에 대한 발주 협상을 진행 중이다. 벤처 글로벌은 미국의 대중국 규제를 고려해 이번 입찰에서 중국 조선소를 제외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스의 ‘선박왕’ 에반겔로스 마르나키스도 최근 HD현대 계열사와 선박 20척을 발주하는 내용의 건조의향서를 체결했다. 부유식 액화천연가스 생산설비(FLNG)의 경우 최근 중국의 유일한 FLNG 건조 업체인 위슨이 미국 블랙리스트에 등재되며 삼성중공업이 사실상 글로벌 시장을 독식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중형 조선사들이 주력하는 중저가 범용 선박으로도 수주 영역이 확대될 전망이다. 탱커선(유조선), 컨테이너선, 벌크선 등 시장은 기술 격차가 크지 않아 10~20% 저렴한 가격을 제시하는 중국으로 발주가 몰려왔는데, 입항 수수료로 중국 조선사들의 가격 경쟁력이 약화하면 국내 중형 조선소에도 기회가 열릴 수 있다.
국내 조선사들은 도크 부족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해외 조선소 확충에 나섰다. HD한국조선해양은 미국 사모펀드로부터 임차해 사용 중인 필리핀 수비크조선소 부지의 건조 능력 확장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중공업도 동남아 조선사와 현지 조선소 활용 방안을 검토 중이다. 업계 관계자는 “주로 중국에 물량을 맡겼던 글로벌 선주들이 최근 들어 국내 기업에 적극적으로 발주를 넣고 있다”고 말했다.
임송수 기자 songsta@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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