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윰노트] 기독교인의 국가

Է:2025-04-04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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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윤 대통령 탄핵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국가는 가난
하고 소외된 이들 지켜내야

나는 기독교윤리학자로서 “기독교 신앙이 민주공화국 체제를 절대적으로 옹호한다”고 말하지 않겠다. ‘인간의 나라(the Earthly City)’일 뿐인 ‘민주공화국’은 ‘하나님 나라(the City of God)’와 완전히 같을 수 없기 때문이다. 공화국의 이념이 자유주의든, 사회주의든 상관없다. 자유와 평등 중 무엇을 더 우선하는가의 차이가 있을 뿐, 시민이라면 누구나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선험적으로 지닌다는 사회적 합의가 전제됐다는 면에서 근본적으로 다르지 않다.

하지만 ‘선험적’이라는 말이 암시하듯 그러한 권리는 우리 삶에서 경험적으로 온전히 성취될 수 없다. 시민 각자의 자연적이거나 사회적 능력에 따라 차등적으로 경험될 뿐이다. 그러니 민주공화국은 ‘자유로의 권리’와 ‘평등으로의 권리’를 표방하는 미완의 정치체일 뿐이라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다.

그렇기 때문이었을까. 플라톤이 논했던 국가(the Republic)도 결코 실현될 수 없는 이상 국가(Callipolis)였다. 그는 거의 모든 시민이 육체적 쾌락에 묶여 있다고 봤기 때문에 철인왕의 통치를 통해 시민이 일찍부터 객관적인 합리성을 깨우치도록 교육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될 때 시민이 개인의 쾌락에서 해방돼 국가의 생명을 목적으로 삼을 수 있는 자가 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는 인간은 지금보다는 더 나은 국가를 만들어 갈 수 있는 합리적 이성을 갖고 있다는 강력한 인문주의적 희망을 플라톤이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 현실은 플라톤의 국가가 아니라 고대 이스라엘의 국가에 가깝다. 이집트 종살이에서 해방돼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은 오랫동안 ‘국가’ 없이 살았다. 하지만 백성은 결국 하나님께 왕을 요구했다. 하나님은 왕의 제도가 백성을 착취하고 억압할 것이라 강하게 경고했다. 하지만 백성은 경고를 무시하고 뜻을 굽히지 않았다. 그들에게도 왕이 있다면 다른 국가의 왕처럼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워줄 것이라는 이유를 댔다. 하나님은 다른 말을 더하지 않고 왕을 세우도록 했다.

백성은 하나님의 경고에도 왜 왕을 달라고 졸랐을까. 고대 근동의 국가들은 왕이 전쟁을 통해 영토와 노략물을 백성들에게 나누어주던 제국이었다. 그러니 단순히 백성의 생명을 지키는 방어 전쟁에 나설 왕을 달라고 한 것이 아니다. 국가를 세우고자 했던 그들의 마음에는 전쟁의 승리로 획득한 영토와 노략물을 나눠가질 수만 있다면 권력의 착취와 억압 정도는 기꺼이 참아낼 수 있다는 어리석은 이기심이 가득했다. 이 이야기는 근본적으로 국가라는 권력체제가 인간의 이성적 합리성에서 세워지는 것이 아니라 탐욕과 폭력에 물든 인간 보편의 악에서 기원하는 것임을 폭로한다.

이 글이 공개될 날에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재판 선고가 있다. 내게는 확고한 정치적 입장이 있고, 원하는 결과도 분명하다. 그러나 원하는 바가 이루어진다고 해도 ‘민주주의의 승리’라는 말을 더는 하고 싶지 않다. 우리의 민주주의는 ‘인간의 나라’의 것이기에 이미 인간 실존의 보편적 악에 너무 깊이 물들었다. 양비론이 아니다. 차라리 내가 속한 정치 진영에 대한 철저한 절망이고 반성이다. 이제 우리는 어떠한 결과가 나오더라도 우리의 민주주의를 계속해서 촘촘히 감시해야 한다. 누구도 철인왕이 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떻게 감시해야 하는가. ‘인간의 나라’와 ‘하나님 나라’의 이중국적자에게 기준은 명백하다. 우리의 국가가 가난한 변방의 어부들과 병자들, 장애인들, 창녀라고 손가락질받던 여인들, 소외된 이방인들을 지켜내고 있는가. 그것이 가장 우선적인 기준이 되어야 한다. 기독교인은 ‘인간의 나라’에서 작은 겨자씨를 틔워 공중의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큰 나무를 키우는,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다. 그것은 기독교를 국교로 만드는 일과는 절대 무관하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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