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현지시간) 찾은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기아 대리점에는 흔히 ‘스틱’이라고 부르는 수동변속기를 장착한 신차가 여기저기 보였다. 전시차 9대 중 4대가 스틱 차였다. 유럽인은 여전히 스틱 차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어서다.
이유는 다양하다. 유럽처럼 좁고 구불구불한 골목이 많은 지형에선 빠르게 가속하는 데 스틱이 유리하다. 미국잡지 리더스 다이제스트는 “유럽인은 운전대를 잡으면 통화 등 ‘딴 짓’을 잘 하지 않기 때문에 유럽에 스틱 차가 많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가장 큰 이유는 경제성이다. 유럽은 미국보다 기름 값이 비싼 편이라 차량 구입시 연비를 중요하게 따지는데, 스틱은 자동변속기보다 기름을 10~15% 덜 먹는다. 이곳에서 만난 후안(75)은 스토닉 하이브리드 시승을 마친 뒤 계약을 하려던 참이었다. 그는 “직장에서 은퇴했기 때문에 유지비가 덜 드는 하이브리드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스페인에서 판매된 신차 중 전기차 비중은 5.6% 수준에 불과하지만 경제성을 추구하는 이곳 소비자 성향은 매년 전기차 판매량을 끌어올리고 있다. 에두아르도 모사스 기아 스페인법인 매니저는 “친환경적이라는 인식보다 유지비가 합리적이라는 생각 때문에 전기차를 구매하는 측면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런 맥락에서 저가 전기차로 전 세계에 침투하고 있는 중국 업체는 유럽시장에 위협적인 존재다. 특히 유럽인은 생산국을 따지는 편이 아니라서 ‘메이드 인 차이나’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크지 않다고 한다. 알바르 가르시아 꼰대 스페인법인 딜러십개발담당 이사는 “유럽 소비자는 ‘국가’보다는 자동차 자체를 두고 판단하기 때문에 가격이 저렴한지 여부가 더 중요하다”며 “중국차는 가격이 합리적이라는 인식이 강하다”고 말했다.
덩치가 작은 보급형 전기차가 시장에 등장할수록 유럽에서 전기차 확산세는 가팔라질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유럽 길거리를 돌아다니는 차량은 대부분 작은 차급이었다. 후안의 집엔 이번에 구입한 스토닉을 포함해 자동차 4대가 있는데 소형 3대(스토닉, 리오, 니로), 준중형 1대(스포티지) 등 전부 작은 차급이다. 다음날 찾은 이탈리아 로마 거리에도 한국에선 볼 수 없는 현대자동차 i10 등 소형 해치백 차량이 즐비했다. 에두아르도 매니저는 “기아의 소형 전기 SUV EV2는 스페인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차 크기”라며 “유럽에서 성공할 것으로 확신한다”고 했다. 송호성 기아 사장은 전날 열린 ‘2025 기아 EV데이’에서 “유럽에서 EV2의 10만대 판매 목표는 어렵지 않게 달성할 것”이라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내년 유럽 출시가 목표다.
한국에서 전기차 판매에 가장 큰 걸림돌로 거론되는 게 화재 위험성이다. 그러나 스페인은 그런 분위기가 아니라고 한다. 이 대리점 매니저인 아구스티 가르시아는 “화재를 걱정하는 스페인 소비자는 거의 없다. (관심이 없다보니) 전기차에 불이 났다는 뉴스도 안 나온다”고 했다. 이런 스페인시장에서 기아는 다른 경쟁업체보다 빠르게 전동화 전환을 이끌고 있다. 2014년 쏘울 EV를 시작으로 2019년 니로 EV, 2021년 EV6, 2023년 EV9, 지난해 EV3 등 다양한 전기차 라인업을 출시했다. 지난해 전기차 판매량은 전년(2620대)보다 1.0% 많은 2645대로 7년 연속 증가했다.
바르셀로나=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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