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욱 칼럼] 부정선거? 필터버블부터 터트려야

Է:2025-02-12 00:50
ϱ
ũ

중국 해커 선관위 서버 해킹론
과거 음모론에 얹혀져 진화 중

비상식·비논리적 궤변인데도
매일 접하니 사실로 받아들여

보수 진영 참담함 이해되지만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트릴 뿐

12·3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금까지 서울에서만 400건에 달하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 찬반 집회가 경찰에 신고됐다. 집회 일수는 60일에 육박하니 거의 매일 서울 도심에서 탄핵 관련 집회가 있었던 것이다. 보수·진보 양 진영이 경쟁적으로 집결하는 광화문은 주말이면 난리가 난다. 요란한 확성기 소리는 북악산, 인왕산을 넘어 북한산까지 울린다. 서울만이 아니다. 지난주말 동대구역 앞 인파는 5만명이 넘었다. 같은 날 광화문 보수 집회 3만5000명보다 많았고, 1주일 전 부산역 집회의 4배였다.

가열된 집회에서의 구호는 거칠기 마련이다. 하지만 여기서 나오는 부정선거 주장은 예사로운 단계를 넘어섰다. 사실 부정선거는 윤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한 주요 이유다. 그는 지난해 12월 12일 대국민담화에서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전산시스템을 신뢰할 수 없다고 했고, 사흘 뒤 페이스북에 올린 ‘국민께 드리는 글’에는 “총체적 부정선거 시스템이 가동됐다”고 적었다. 헌법재판소 대심판정에서도 같은 주장을 반복하는 중이다. 이 부정선거론이 지금 광화문광장과 유튜브를 오가며 몸집을 키우고 있다. 처음에는 ‘22대 총선에서 전자개표기를 사용한 선관위 서버가 해킹됐다’는 추측성 의혹에 불과했는데 중국 개입설과 21대 총선 직후 제기됐던 의혹들이 덧붙여지면서 그럴듯하게 발전하고 있다.

사전투표와 본투표의 득표율 차이가 너무 크다는 ‘사전투표 조작설’은 이미 폐기된 음모론이다. 각각의 투표에 참여한 유권자 성향이 동일하다는 전제가 성립할 수 없어서다. 전자개표기에 특수한 칩을 삽입했다는 ‘전산조작설’은 우리나라에서는 전자투표가 없고, 개표 과정에서 분류기만 사용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잠잠해졌다. 그런데 이런 폐기된 음모론들이 중국 해커설과 결합해 되살아났다. 해커가 선관위 서버를 해킹해 가공의 사전투표자를 만든 뒤 가짜 투표지를 사전투표함에 투입했다거나, 이를 실행한 중국인 간첩을 미군이 체포해 일본으로 압송했다는 가짜뉴스를 업고 위세를 떨친다.

물론 보수 집회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부정선거를 확신하고 집을 나서지는 않았을 것이다. 입법부 권력을 장악하고 폭주하는 더불어민주당, 이미 대통령인 것처럼 행동하는 이재명 대표에 대한 반발이 집회에 참가하는 더 큰 이유일 수 있다. 하지만 몇 단계 비약을 거친 비상식적 주장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 점점 많아지는 건 분명하다. 상황 논리와 확인되지 않은 ‘카더라 통신’을 전하며 돈을 버는 유튜버, ‘정보 소식통’ ‘정치권 관계자’의 주장 외에는 근거가 없는 장삿속 기사를 내놓는 인터넷 언론의 폐해를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그들이 퍼트리는 부정선거론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으니 무시할 수 없다는 사람도 쉽게 만날 수 있다. ‘레거시 언론’은 부정선거 의혹을 파헤치는 탐사보도를 왜 안하느냐는 질책도 여러 번 들었다.

2025년은 답답하게 시작했다. 나라 안팎이 시끄럽고 먹고 살기 어렵다. 대통령은 감옥에 있는데, 국회의원들은 입만 열면 거짓말이고 만나면 악다구니다. 대통령이 왜 계엄을 선포했는지, 탄핵 심판이 언제 어떻게 끝날지, 개헌이 가능할지, 진실은 베일에 싸여 있고 미래는 불확실하다. 그런 답답함이 오류를 낳는다. 기계적 중립성에 빠진 신문 기사에 없는 내용을 담은 유튜브를 보며 궁금증을 푼다. 그러다 필터 버블(filter bubble)에 갇힌다. 필터 버블은 유튜브, 페이스북 등 정보제공자가 알고리즘에 따라 개인 맞춤형 정보를 제공하고, 이용자는 이런 필터링된 콘텐츠만 접하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수학 교수에서 선물거래 전문가로, 다시 ‘월스트리트 점령 시위’를 이끄는 시민운동가로 변신한 캐시 오닐은 이 알고리즘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대량살상무기라고 비난했다. “나는 절대 그런 것에 갇히지 않는다”고 무시할 게 아니다. 당장 유튜브뿐 아니라 인공지능(AI)이 알고리즘에 따라 뉴스의 우선 순위를 정하는 네이버, 구글 등 포털사이트의 검색기록부터 삭제할 필요가 있다. 정치적 견해가 전혀 다른 사람의 스마트폰에는 어떤 뉴스가 맨 위에 뜨는지 확인해야 한다. 부정선거가 대한민국의 가장 큰 뉴스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나만의 관심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출발점이다. 무너진 보수는 부정선거를 외친다고 일으켜 세울 수 없다. 비상식적인 음모론은 보수를 더욱 깊은 나락으로 빠트릴 뿐이다.

고승욱 수석논설위원 swko@kmib.co.kr

GoodNews paper Ϻ(www.kmib.co.kr), , , AIн ̿
Ŭ! ̳?
Ϻ IJ о
õ
Ϻ 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