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비상계엄과 탄핵 정국에 빼앗긴 연말이었다. 즐거운 마음으로 보려던 이들과의 연말 약속이 꽤 많이 미뤄지거나 취소됐는데, 용케 예정대로 만난 자리에서도 대통령, 계엄, 무속, 탄핵 얘기가 빠지지 않았다. 그 때문에 모임 나가는 걸 포기했다는 이들도 꽤 많다. 끝까지 기쁜 모임으로 마무리할 자신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성탄절을 앞두고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매년 조금씩 더 무뎌진다고 한탄하곤 했지만, 이토록 무감했던 때가 있었나 싶었다. 코로나19가 확산할 때는 모이지 못하는 아쉬움이나 서로를 그리는 애틋함이라도 있었는데, 이번엔 말 그대로 아무 마음도 생기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성탄 기분이 안 난다’ ‘크리스마스이브인 줄도 몰랐다’ 등의 말이 마주치는 사람들 사이 인사처럼 오갔다.
성탄절마다 당연하게 들어왔던 기쁨의 말씀들이 새삼 무겁게 다가온 건 그래서였다. “천사가 이르되 무서워하지 말라. 보라 내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을 너희에게 전하노라. 목자들은 자기들에게 이르던 바와 같이 듣고 본 모든 것으로 인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고 찬송하며 돌아가니라.”(눅 2:10, 20) 성경은 예수님이 탄생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하면서 더 나아가 주를 찬양하며 기쁜 소식을 널리 알리라고 명한다. 기뻐하고 그 기쁨을 알리는 것이 책임이라는 말씀이다. ‘성탄절 느낌’을 운운하며 기뻐하지 못한 건 사실 한탄할 일이 아니라 반성할 일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지금처럼 어둡고 갈등하는 시대에 기쁨을 찾는 것은 물론, 그것을 전하는 일은 더더욱 어렵다. 정당한 분노를 통해 변화시켜야 할 상황에서 그저 기뻐하자는 건 자칫 현실을 외면하자는 목소리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소외되고 힘든 이들에게는 무조건 ‘기뻐하자’는 외침은 더 큰 박탈감과 상처를 남길 수도 있다.
기뻐하는 일에 지혜가 필요한 것이다. 무엇을 어떻게 기뻐해야 할까. 사도 바울이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빌 4:4)면서 강조한 건 관용과 감사였다. 이를 통해 이뤄질 평강도 말했다. 주 안에서 사랑하고 서로 보듬고 그걸 통해 평화를 얻는 게 곧 기쁨이라는 의미이지 않을까. 김기석 청파교회 원로목사는 책 ‘사랑은 느림에 기대어’에서 시편 34편을 인용해 인생을 즐겁게 살고자 하는 이는 “평화를 찾기까지 있는 힘을 다해야 한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적었다. 평화가 있을 때 기쁨도 있는데, 그 평화가 가만히 앉아서 기다린다고 주어지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갈등하고 경쟁하고 비방하는, 전혀 평화롭지 않은 현실을 내버려둔 채 기쁨을 누릴 순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쁨이란 어두운 시대를 외면하고 한가롭게 누리는 게 아니라 이 어두움에 빛이 될 태도와 행동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최근 보도된 경기도 평촌의 한 네일숍 사장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40대 여성인 사장은 ‘눈이 침침해 손톱을 자르다 다친다’며 우연히 자신의 매장을 찾아온 90대 할아버지의 손톱을 정리해주게 됐다. 할아버지의 말들이 너무 따뜻해 찍게 된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200만번 넘게 재생될 정도로 많은 이들이 감동했다. 할아버지를 위하는 사장의 태도와 그런 그에게 ‘너무 잘한다’ 등의 따뜻한 말을 전하던 할아버지의 대화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린 것이다. 사장은 오히려 자신이 할아버지의 말에 힘을 얻었다고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말했다. 하나님이 당시 마음이 각박했던 자신에게 할아버지를 보내주셨던 것 같다고도 했다. 할아버지를 후원하고 싶다는 연락도 이어졌다. 그가 한 일은 작았을지 몰라도, 따스한 온기와 빛이 널리 전해지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반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새해에도 여전히 세상은 어두울 테지만, 한탄만 해서는 아무런 빛도 켜지지 않는다. 내 옆의 한 사람에게라도 온전한 따스함을 전하는 것부터 기쁨의 행동을 시작해보자.
조민영 미션탐사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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