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운에 맡겨진 관계

Է:2024-11-21 0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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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헤어진 연인을 살해한 30대 남성 미용사의 신상정보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경북 구미의 한 아파트에서 전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곁에 있던 여자친구의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두른 혐의로 구속된 그는 살인 전에도 전 여자친구를 스토킹하며 위협했었다. 하루 전인 지난 13일엔 ‘북한강 시신 유기사건’의 피의자인 현역 장교의 얼굴과 이름이 공개됐다. 같은 부대에서 근무했던 여성 군무원을 살해하고 시신을 훼손해 강원도 화천군 북한강에 유기한 이 엽기 사건도 연인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비슷한 일은 그 전에도 후에도 있었다. 서울 강서구에서 한 40대 남성은 자신과 만나던 여성이 다른 남성을 만난다는 얘기에 화가 나 살해한 혐의로 붙잡혔고, 지난 6월엔 경기도 하남의 한 아파트에서 헤어지자는 여자친구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20대가 붙잡혔다. 자신과 헤어지려고 찾아온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어머니에게도 흉기를 휘둘러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김레아가 항소했다는 소식이 전해진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았다. 명문대 의대생이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동갑내기 여자친구를 살해해 사회를 충격에 빠뜨린 것도 올해 벌어진 일이다.

‘헤어지자고 한 여자친구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대 A씨’와 같은 표현은 이제 사건사고 기사의 대표 구문처럼 여겨질 정도다. 발생 지역은 전국이고 가해자의 직업군도, 연령대도 다양하다. 알려진 유사점은 거절당한 남성이라는 점 정도다. 범죄를 성별의 문제로 엮는 건 프레이밍이라는 반론이 있지만 공식 통계가 없을 뿐 판결문이나 뉴스보도 등을 근거로 한 분석에서 교제살인 사건의 절대다수 피해자는 여성으로 확인된다.

너무 광범위하게 자주 벌어지다보니 자칫 둔감해질 뻔했을 정도다. 무뎌진 감각을 때리듯 깨운 건 지난주 전해진 판결 소식이었다. 창원지법 통영지원 형사1부는 지난 4월 경남 거제에서 전 여자친구 집에 무단 침입해 무차별 폭행하고 결국 숨지게 한 20대 남성에게 징역 1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죄책이 무겁고 엄중한 처벌이 필요하다”면서도 살인죄로 기소되지 않았고 우발적 범행, 초범이란 점을 양형에 고려했다. “내 아이는 세상에 없는데, 쟤는 (형을 다 살고) 나오면 30대”라는 피해자 어머니의 절규처럼 낮은 형량이었다. 재판부가 우발성을 인정한 이유로 내놓은 설명은 다른 의미에서 충격이었다. 재판부는 “연인 관계에서 발생하는, 이른바 데이트 폭력은 가해자와 피해자의 특수한 관계 때문에 가해자가 범죄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분노 등 감정이 폭발한 상태에서 범행이 일어나 행위 위험성이 가중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살해 계획이나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님을 설명하는 취지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 말은 교제폭력이 그 자체로 얼마나 위험한지 보여줬다. 언제든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질 폭발력이 있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교제살인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등장하는 해법 중 하나가 교제폭력을 사적인 영역에 맡겨 놓지 말라는 것이다. 과거 ‘집안 문제’로 치부됐던 가정폭력처럼 말이다. 연애 관계가 낭만이고 두 사람의 사적인 문제지, 그 사이에서 발생하는 폭력은 다른 문제다. 무엇보다 그 단계에서 확실히 멈춰주지 않았을 때 벌어진 일을 우리는 숱하게 목격했다. 달리 말하면 개입할 타이밍이 있다는 의미다.

내가 만날 사람 중 누가 위험한 사람일지, 혹은 어떻게 돌변할지 모른다는 불안이 지배하는 사회는 당연히 불행하다. 적어도 ‘안전한 관계’를 갖는 게 개인의 행운에 맡겨져선 안 된다. 상대의 문제를 감지했을 때, 더 이상은 함께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피하거나 보호받고 싶을 때, 개입해 줄 제도가 필요하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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