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여성 A씨는 경남 한 병원에서 출산했다. 아이와 함께 모자원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입소 조건에 ‘출생 신고’가 있다는 사실을 안내받고 발길을 돌렸다. 극심한 우울증을 겪던 A씨는 결국 양육을 포기했다. 지난 3월 서울의 한 위기 영아·임산부 지원센터를 찾아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며 아이를 맡기고 떠났다.
A씨처럼 아동의 출생 신고를 원치 않는 경우라도 모든 의료기관이 태어난 아동의 출생 사실을 정부 기관에 의무적으로 통보하는 출생통보제가 19일부터 시행된다. 출산 사실이 알려지는 것을 주저하는 위기임산부가 병원 밖 출산, 아동 유기 등의 상황에 내몰리지 않도록 가명 출산 등을 지원하는 보호출산제도 함께 도입된다.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가족관계등록법 개정안’과 ‘위기임신보호출산법’이 동시에 시행된다고 18일 밝혔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출생통보제가 시행되면 병의원에서 태어나는 모든 아동을 파악하고 보호할 수 있다”며 “보호출산제도 막다른 길에 몰린 산모와 아동을 지키기 위한 마지막 대안”이라고 밝혔다.
이는 미등록 출생 아동과 이른바 ‘위기임산부’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앞서 지난해 감사원 감사 결과 2015~2022년 출생신고가 이뤄지지 않은 ‘그림자 아동’은 2236명에 달했다. 앞으로는 출생통보제 시행으로 지자체가 아동의 생사 여부를 체크할 수 있게 된다.
위기임산부는 긴급 전화 ‘1308번’을 통해 전국 16개 지역상담기관에서 보호출산에 관한 상담·안내를 받을 수 있다. 단 무분별한 가명 출산을 방지하고자 원가정 양육을 위한 상담과 숙려기간(7일 이상) 등을 반드시 거쳐야 한다. 또 향후 출생 아동의 알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출생증서를 작성해야 하고 아동권리보장원이 이를 영구 보존한다.
다만 보호출산제가 자리 잡기까지 혼란은 불가피하다. 위기임산부의 자발적 참여에 의존한 데다 ‘원가정 양육’에 대한 거부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위기임산부가 자발적으로 도움을 구하도록 유도하는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베이비박스를 운영하는 이종락 주사랑공동체 이사장은 “위기 임산부에 대한 ‘선(先) 지원, 후(後) 행정’ 방식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지원 절차를 더 간소화하고, 무기명 선불카드, 임시 주거지 등의 지원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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