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d 건강] 40·50대 마라톤 마니아, ‘운동 유발성 고혈압’ 알고 있나요?

마라톤은 이제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대중 스포츠로 자리잡았다. 크고 작은 마라톤 대회에 수천수만 명의 인파가 몰린다. 마라톤 마니아들은 요즘처럼 무덥고 습한 날씨에도 달리기에 열심인 경우를 주변에서 종종 본다. 하지만 40·50대에게는 마라톤 같은 고강도 달리기가 자칫 심장에 '독'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신체 능력을 벗어난 과도한 운동이 '운동 유발성 고혈압(Exercise-Induced Hypertension·EIH)'을 일으키고 이런 상태가 지속되면 심장 돌연사로 이어질 수 있어서다.

삼성서울병원 순환기내과 박경민 교수와 성신여대 운동재활복지학과 김영주 교수팀은 이런 경고를 담은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임상의학 저널’ 최신호에 발표했다.

일반적으로 걷기나 가벼운 달리기는 심폐 지구력을 높이고 혈압을 떨어뜨려 건강에 도움이 된다. 그런데 중년층은 과도한 달리기로 인한 운동 유발성 고혈압을 경계해야 한다. 일반인은 최대 운동을 하더라도 남성의 경우 수축기와 이완기 혈압이 200/100㎜Hg를 잘 넘지 않는다. 최대 운동 시 수축기 혈압이 남성 210㎜Hg, 여성은 190㎜Hg 이상 올라갈 경우 EIH에 해당된다.

연구팀은 운동 부하 고혈압 관련 연구 논문 24개를 분석했다. 그 결과 연령과 인종을 망라해 EIH의 유병률은 3~4%로 높지 않았지만, 중년 남성으로 국한하면 유병률이 40%로 크게 높아졌다. 마라톤을 즐기는 중년으로 범위를 좁히면 56%가 EIH에 해당됐다. 중년의 남성 마라톤 마니아 상당수가 EIH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볼 수 있다.

미국 스포츠의학회(ACSM) 가이드라인에 따르면 과도한 달리기는 주 150시간, 하루 60분 이상 힘들다는 느낌으로 수년에서 수십 년 지속했을 때를 말한다. 삼성서울병원 박경민 교수는 1일 “EIH를 일으킬 정도면 마라톤 마니아에게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이어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할 체력이면 보통 사람의 심폐 능력을 몇 배 초과한 상태이며 건강에 매우 이로운 부분이 많겠지만 반대로 EIH에 노출돼 장기간 유지될 경우 심혈관에 무리를 주고 심근경색 같은 치명적인 ‘심장 이벤트’가 일어날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가벼운 달리기나 100m처럼 전력 질주를 간헐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크게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EIH는 강한 운동을 장기간 지속할 때 발생할 수 있고 일부 유전적 요인도 작용한다.

문제는 이런 고혈압이 일으키는 이차 질환이다. EIH는 심근경색의 주요 원인인 죽상 동맥경화증(혈관 내피에 지질이 쌓여 죽처럼 굳은 상태)을 가속화하고 심방 확장, 심근 비대 등을 유발해 치명적인 부정맥으로 악화할 수 있다. 부정맥은 심장 박동이 비정상적으로 빨라지거나 느려지거나 하는 불규칙한 현상이다. 실제로 연구진이 찾은 논문에는 중년층의 죽상 동맥경화증 유병률이 마라톤 등 지속성 운동을 하는 경우 44.3%로, 일반인(22.2%)의 배에 달했다.

걷기나 중간 정도 달리기는 일반 인구의 심장 부정맥 유병률을 줄이지만 과도한 운동에 만성적으로 노출된 선수들, 특히 중년층은 일반인보다 심방세동 위험이 5배 이상 높다는 연구도 있었다. 심방이 불규칙하게 수축하는 심방세동은 돌연사의 주요 원인이다.

박 교수는 “과도한 운동이 심방에도 무리를 줘 확장 및 비대 가능성을 높이기 때문에 EIH가 있는 사람의 심방세동 유병률을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연구에서는 일주일에 3시간 이상 10년 넘게 마라톤 같은 고강도 지속성 운동을 하는 경우 심방세동과 관련 있다고 분석했다.

박 교수는 “일반인에게 발생하는 고혈압 자체가 심장질환의 중요한 위험 인자인 것처럼 평소 고혈압이 없다 하더라도 장거리 고강도 운동을 하는 이들에게서 운동 중 발생하는 고혈압 역시, 이차적인 심장 부정맥을 유발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운동 중 EIH가 있어도 본태성 고혈압처럼 증상을 잘 느끼지 못한다. 단 심근 산소 요구량이 증가해 더 숨이 차고 힘들 수는 있다.

따라서 40세가 넘으면 마라톤을 즐기기에 앞서 자기 신체 능력과 심장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연구팀은 강조했다. 심장 관상동맥의 허혈(좁아지거나 막힘) 여부는 먼저 운동 부하검사로 감별한다. 이는 러닝머신 위에서 뛰면서 받는 심전도 검사라고 보면 된다. 민감도가 70%에 달하지만 심전도로 확진할 수 없는 한계가 있다.

더욱이 마라톤 마니아들은 관상동맥의 부수적 순환이 발달해 허혈이 존재해도 발견하기 힘든 경우가 있다. 따라서 심장 CT를 통해 직접 관상동맥 상태를 확인하는 것이 가장 확실하다. CT 영상에서 혈관 협착이 있을 경우 가장 위험한 상황은 75% 이상 막혔는데도 운동 중 증상이 없을 경우다. 이땐 운동을 중단하고 더 정밀한 검사를 받아보는 게 좋다. 필요하다면 ‘경피적 관상동맥 중재술(스텐트 삽입)’ 같은 적극적인 치료를 고려해야 한다. 이런 사람들은 운동 중 돌연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중년이라는 시기가 하나의 위험 인자로 작용하기 때문에, 이때 무리한 운동은 동맥경화를 가속화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마라톤을 즐기는 경우라면 연 1회 이상 운동부하 검사를 받아 EIH가 있는지 꼭 확인이 필요하다.

근래 마라톤을 즐기는 여성들도 많아지고 있는데, 이번 연구 대상에선 제외됐다. 박 교수는 “연구에 여성 참여자가 많지 않았고, 심장 돌연사의 대부분을 남성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라며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EIH가 있으면 추가 검사가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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