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겨울밤 토끼 걱정

Է:2024-01-19 0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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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유희경 시인의 시집 ‘겨울밤 토끼 걱정’을 읽다가 퍼뜩 ‘만우’ 생각이 났다. 만우는 오래전에 내가 키웠던 산토끼 이름이다. 강릉에서 시모임이 있던 날, 강원도 정선에 사는 친구가 모자를 품에 안고 등장했다. 모자 안에 아기 토끼가 들어 있었다. 뜻밖이었다.

지인은 오랫동안 지켜봤는데 어미가 버리고 간 모양이라고 덧붙였다. 토끼는 손안에 오목하게 들어갈 만큼 작았다. 공교롭게도 그날은 만우절이었고 깜짝 나타난 토끼에게 우리는 ‘만우’라고 이름을 붙였다.

만우는 잿빛 줄무늬에 이마 가운데 번개 모양의 흰 털이 난 토끼였다. 기력이 없어 보여 급한 대로 우유를 손가락에 묻혀 입을 축여 주었다. 만우는 앵두꽃잎보다도 작은 혀로 몇 번 핥았다. 그제야 지인이 한시름 놓으며 말했다. “먹는 거 보니, 만우 살겠다!”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 내가 만우를 보살피기로 했다. 만우는 주로 클로버를 먹었지만 줄기를 자르면 하얀 즙이 나오는 민들레나 냉이를 더 좋아했다. 만우는 까맣고 동글동글한 똥을 눴다. 시옷으로 갈라진 입을 오물거리며 끊임없이 풀을 먹었다. 대단한 식성이었다. 나는 심마니처럼 아침마다 신선한 풀을 구하러 다녔다.

털 조끼로 방석을 만들어 깔아 주었더니 만우가 코를 벌름거리며 다가왔다. 조끼에 얼굴을 묻듯이 파고들어 뺨과 등을 마구 비벼댔다. 만우는 깊이 잠들지 못했다. 깜짝깜짝 놀랐고, 뭔가 위험을 감지할 때마다 뒷발을 쿵쿵 굴렀다. 나중에는 몸집이 두 배가량 커졌고 이빨도 쌀알만큼 자랐다. 한번은 만우를 쓰다듬다가 손가락을 세게 물렸는데 머리카락이 쭈뼛 설 정도로 아팠다. 다시 만우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만우는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갔다. 강원도 산골짜기에서 만우는 잘 지낼까. 너무 춥지는 않을까. 차고 맑은 겨울밤이 깊어 간다.

신미나 시인 겸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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